변두리생활

‘찬찬이’

변두리1 2016. 6. 17. 15:39

찬찬이

 

   큰 아이가 십년도 더 된 중고차를 사서 운전하고 다닌 지가, 한 달 하고도 보름여가 지났다. 학원에서 외국어를 강의하고 있다가 다른 회사를 알아본다고 하더니 차가 없으면 너무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을 옮기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운전을 배워서 면허를 취득하고 차를 구입해 다니겠다고 하더니 자신의 계획대로 짧은 기간에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성격이 운전에 맞지 않을 것 같고 자기도 운전은 맞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니 필요를 느끼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학원에 등록하고 운전면허를 얻고 차를 구입하는 때에 아버지로서 많은 짜증이 났다.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 책임져야 하는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면허도 나오기 전에 집 앞에 도착해 있는 중고차. 나는 운전해야 할 차를 보면서 걱정이 한 가득이었는데, 큰 애는 기뻐하는 것도 같고, 어쩔 수 없어 하는 것도 같았다. 20년을 넘게 운전을 하지만 나는 내 차 외에는 거의 운전을 하지 못한다. 예전에 주차된 채로 다른 차에게 긁혀, 수리하는 동안 차를 임대받은 적이 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한 번도 운행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시 끌어간 적이 있을 정도다. 아이가 중고차를 사는 것도 안쓰럽고 그것도 보태주지 못하는 내 무력함이 더욱 나를 화나게 했다.

   면허를 받고 잠간의 연습을 하더니 차를 운전하고 다닌다. 대개가 그렇듯이 조심하는 기간이긴 해도 접촉사고가 많이 나는 기간이니 그런 일이 없을 수야 있을까. 이미 주차해 놓은 차에 흠집을 내기도 하고 주차하다가 다른 차를 받기도 했으며 벌써 신호위반으로 과징금을 물기도 했다. 차 뒷부분에 개 그림을 붙이고 초보라고 해놓았으니 금방 표시가 난다. 회사에 처음 가면서 운전을 하되 서투르니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겨나나 보다. 주차가 힘들게 되어있으면 선배가 빼주어야 하고 차 몇 대가 이동을 하면 속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은 가족 모두가 그 차를 타본 적은 없다. 나도 딸애가 운전하는 그 차를 타보지 않았는데 그 일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회사에서 몇 몇이 이동할 일이 있을 때, 가끔 그 차를 타는데 사람들이 불안해하며 손잡이를 꽉 잡는다고 한다. 그들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내 딸의 불안해 할 마음도 짐작할 수 있다.

 

   가족들이 그 차에 이름을 붙였으면 해서 내가찬찬이를 제안했더니 별 반대 없이 정해졌다. 조심하면서 항상 천천히 운전하라는 부탁과 염려가 들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개가 그려진 초보를 붙이고 한 쪽 구석에 얌전히 주차되어있는 그 차를 보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그 차가 어딘가를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이미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갔으니 염려하는 많은 부분은 좋아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동차도 인류가 발명해 낸 몇 안 되는 골칫거리 중에 하나 일 지도 모른다. 시간을 절약해주고 편리함을 선사했다고 할지 모르나 많은 연료를 소모하고 운동부족을 초래한 장본인인 것만 같다. 차가 가져다 준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차가 없던 시절보다 사람들은 더욱 분주해졌지만 더 많은 일들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중요한 일들이 더 많이 행해지는 것 같지도 않다. 아까운 많은 인명이 죽고 다치는 사고만 연일 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제 그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졌으니 다시 불편함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족을 향한 내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러 일들을 찬찬이가 나누어 하고 있다. 일부러 구분하지 않아도 내가 분주하거나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은 딸들이 알아서 그 차를 이용하고 있다.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역할이 줄어들고 밀려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머지않아 세 아이들이 모두 자기 차를 운전하고 다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태의 흐름이니 거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른 나의 충격도 갈수록 약해질 것이다. 도리어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편하게 여길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근본적인 속도, 건강한 두 다리로 걸었던 시속 5km 안팎을 늘 기억하고 삶에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유난히 빨리 온 더위에 차 냉방기를 손보고는 차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투정이다. 편안한 것은 또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다. 이 땅의 삶을 원만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차를 운전하면서도 배우게 될 것이다.

   가끔은 남의 차를 타게 된다. 그 때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는 기분이다. 온갖 최신 장비로 무장된 차의 비품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것들이 별반 없을 아이의 차가 떠오른다. 무시나 당하지 안 을까 걱정하다가 아예 그런 것들과 거리가 먼 내 차를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 모든 것이 허상이고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 소모를 부추기고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야성을 빼앗아가는 것이다.’이런 근거 없는 합리화로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편안해 한다.

   오늘도 찬찬이가 하루 일을 끝내고 무사히 문밖에 돌아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