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변두리1 2016. 6. 17. 13:13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가 부제인 이반 일리치의 글이다. 이반 일리치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1926년 태어나 중부유럽을 떠돌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로 피신하여 신학과 철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한다. 195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뉴욕으로 건너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을 돌보았다. 1956년 서른 살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교의 부총장이 된다. 1966년 급진 운동의 근거지이자 사상적 기반이 된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를 멕시코에 세운다. 그는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린다. 말년에는 한 쪽 뺨에 자라는 혹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현대식 의료진단과 치료를 거부했다. 2002년 독일에서 죽었다. 사회학 철학 경제학 종교학 언어학 여성학 등 여러 분야의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는 학교 없는 사회》《공생을 위한 도구》《의학의 한계》《과거의 거울에 비추어》《텍스트의 포도밭에서등이 있다.

 

   현대인은 가난할 뿐 아니라 불쌍하다. 산업화 이전 분업이 실시되기 전 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웬만한 일은 다 스스로 할 수 있었고 그 일들은 돈벌이를 위한 것보다는 삶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쳐 판매를 위한 상품생산으로 가기위해 분업이 이루어지면서 비극이 싹트기 시작했다. 생산자는 상품의 최종사용자와 인간적 관계가 배제되고 사용가치보다 상품가치에 치우쳐 갔다. 필요를 해결하는 전 과정에 참여하기보다 자신이 맡고 있는 단순과정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분업화로 인한 대량생산은 시장의 확보를 요구했고 그것을 해결하기위한 경쟁이 전쟁으로까지 확산되어 갔다. 그 치열한 과정에서 상품의 질은 향상될 수 있었지만 전문가집단이란 유력한 강자들이 스스로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추어 필요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충족할 제품을 생산한다. 스스로 전문가로 자처하며 동종 업종 종사자들 간에는 동업자조직을 그리고 다른 영향력 있는 전문가들과는 도움을 서로 주고받는 형태로 그들만의 장을 만들고 울타리를 친다. 그들은 더욱 견고해져서 그들이 전문가 자격을 주고 자격자만 제품을 만들게 하고 그것을 규격화하여 그것 외에는 사용할 수 없게 한다.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참여할 수 없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제품은 사용될 수 없으니 생산과 소비가 전문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량생산은 분업화와 기계화를 거친 결과이며 그들은 대량생산과 유통을 성장과 발전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소비하기 위해 소비를 부축이게 되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필수품으로 각인시킨다. 다양했던 제품들은 경쟁에서 승리한 제품으로 단순화되고 소비자들의 잠재능력은 사용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불법화된다. 현대에 이런 현상을 강하게 보여주는 집단들이 관공서를 비롯한 행정기관과 학교와 병원과 복지시설들이다. 주변에 넓은 터를 가진 거대한 건물들을 보면 대개가 이러한 건물들이다. 이들은 공공성을 내세우면서 그들 내부의 강력한 울타리를 가지고 있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면서 그런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들은 대기업과 시장 그 중에도 대형 쇼핑몰과 유력 체인점들이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생산하거나 절제하는 것을 어렵게 몰아간다. 그러므로 소비하지 않는 것과 소비를 위한 수입을 창출하는 직업에 속하지 않는 것은 쓸모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보다 큰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잘하는 일이나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정되어 있는 자원을 미친 듯이 경쟁적으로 소모하는 것이다. 이 공멸을 부르는 위험한 놀이를 속히 중단하고 절제와 자율로 돌아가는 것이 절실하고 긴박한 일이지만 자본주의와 시장으로 대변되는 사적이익의 추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삶 자체가 커다란 모순인 것처럼 인류가 커다란 함정에 빠졌다. 그런데도 함정의 밑바닥을 전력으로 파헤치며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많은 이들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을 외치고 있지만 해결책은 쉽지 않고 그의 실천은 더욱 어렵다.

 

   나는 전문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전문가집단이 너무 많고 폭이 지나치게 넓은 것이 아닌가 한다. 학문과 생활의 영역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각각의 분야에 자격증이 주어지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그 외의 사람들은 비전문인이 되고 무자격자로 전락한다. 삶에서의 융통성은 인정되지 않고 시장을 통한 상품 외에는 유통이 불법이 된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시장뿐 아니라 입법과 정책의 결정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 분야의 강자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상부상조하며 이 사회를 좌지우지한다. 그들이 돌진하는 방향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고 해도 수정할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당장은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서이다.

   양심적인 소수의 지성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절규하며 경고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 왔지만 우리 사회는 실감하지 못했다. 이제는 더 늦출 수가 없다. 이반 일리치는 이 일의 선두주자다. 모두가 절제와 자율을 실천해야 한다.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칭 전문가들과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