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술타나》를 읽고

변두리1 2016. 6. 15. 17:50

술타나를 읽고

-베일에 가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이야기-

 

   자주 대하지 않은 낯선 책을 읽었다. 사우디 여인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 실화라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실명이 아니었다. 특수한 상황이어서 이해가 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가능한 일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니 상상 못할 일들은 아니지만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집단의 폭력성, 종교와 관습 그리고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이어지는 것들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류보편의 가치나 인간 본연의 모습마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블랙홀 같은 현실과 개선의 당위성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우리 사회도 성차별이나 여성을 상대로 하는 범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차이는 우리는 그런 일들을 범죄로 인식하고 추방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고, 저들은 범죄의식 없이 같은 일들이 되풀이 되고 개선의 여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성을 노예나 자녀를 생산하는 도구정도로 인식하고 어린 소녀들을 부유한 노령의 남성들이 그들의 서너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남녀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도 지난한 일이라면 그러한 사상에 근거해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또 얼마나 백년하청에 가까운 일인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남성들이 보여주는 성적인 도덕성의 확연한 차이는 어디에 근거하는가.

   서방세계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일들이 오랫동안 감옥에 갇힐 범죄가 되고 부모나 친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오히려 명예스럽게 행해지고 있다. 왕자와 독실한 신자로 대우받는 수사가 되겠다는 놈팡이가 벌이는 대낮의 소녀 겁탈과 당당함은 우리를 아연케 한다.

   여성들 몇이 모임을 만들고 여성의 지극히 일부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이혼을 합리화하고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을 중죄라는 것은 한 편의 코미디 같은,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어서 슬프다. 외국에서 생활하던 중 이슬람인이 아닌 남자를 만나고 그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 때문에 평생을 좁은 방에 갇혀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나, 자기 집에서 약물에 취한 오빠의 친구들에게 윤간당해 임신한 열세 살의 소녀가 출산직후에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어린 소녀는 태형으로 그칠 수 있는 것을 부친의 주장으로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걸프전으로 인해 외국 여군들의 주둔과 활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에게 희망이 잠시 보였었지만 전쟁이 끝나자 예전의 상태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들 내부에서의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면,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겠다. 지극히 폐쇄적인 그들의 사회에 정보와 자유의 바람이 불면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술타나는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젊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섬세하고 매혹적이며 지적인 데다 사우디 여성들에게 보기 힘든 독립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 그녀는 짓궂고 충동적이며 저항적이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국이다. 완성된 인격이나 지성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마치 다른 이들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남편인 카림이 그래도 개방적인 사고와 성격의 소유자이고, 친정의 힘이 막강했던 것이 그 이유였을 수도 있다.

   술타나가 시어머니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협박에 가까운 위협을 가하며 약점을 공격한다. 아들을 임신하고는 남편과의 불화에 낙태를 감행하려다 직전에 억제를 당하고 화해한다. 남편이 또 다른 아내를 취하려하자 아이들을 인질로 외국으로 도피하여 짧지 않은 세월을 지내며 남편과 협상을 한다.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술타나가 처한 상황이 정상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처지라고 해도 보편적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약자가 억압받고 무시당하는 사회는 힘의 논리만 작용하는 원시 사회로 문명화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기능에 따른 다름일 뿐이다. 인류사에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여성은, 남성들의 이데올로기와 신체적인 차이로 인해서 불이익을 당해왔다. 역사의 진행 방향이 개방과 자유로 흘러온 21세기에서도 이러한 구태가 혁신되지 못한 채로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커다란 부끄러움이다. 그것은 한 동네에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이웃이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 살만한 올바른 동네라면 교육이나 치안 아니면 강제적인 법집행을 통해서라도 잘못된 일을 그치게 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이슬람권 국가에서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 될 일들이 긴 세월 지속된다면 그 책임의 일부는 우리에게도 있다고 하겠다. 세계가 힘을 모아 악폐를 바로 잡아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