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읽고

《가우디》를 읽고

변두리1 2016. 5. 27. 18:39

가우디를 읽고

-건축에 공상의 즐거움을 담은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는 1852년 에스파냐 카탈루냐 지역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몸이 약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허약한 몸이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우디는 신앙을 가졌고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가우디의 아버지는 증조부로부터 3대를 이어온 대장장이여서 대장간은 가우디의 자연스런 놀이터가 되었다.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던 가우디에게 딱 한 번의 좋은 추억은 연극을 위한 소품을 준비하고 무대를 꾸몄을 때였다.

 

   그는 17세에 건축예비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22세가 되던 1874년에 정식건축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곳의 강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축의 구조와 설계를 배우는 것이 새로운 창조라기보다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가우디는 생각이 독특했다. 교수가 존경하는 건축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무와 바위 같은 자연이라고 답했다. 학생들과 교수는 그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려고 장인들의 작업실에 나가 일했는데 그 경험은 건축의 기본과 장식기술연구 그리고 제도와 장식 공예 감각을 익힐 수 있게 했다.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그의 독특한 설계가 인정받지 못해 보류되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수정을 해서 간신히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그의 교수는 가우디를 천재인지 바보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우디는 졸업 후 자신의 작업실을 내고 자신의 작업용 책상을 만들었다. 덫에 걸린 새와 곤충을 조각하고 다람쥐, 도마뱀, 덩굴손을 새겨 네모반듯한 평범한 책상이 아닌 독특한 자신만의 책상을 만들었다. 일거리가 없었던 그에게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할 장갑진열대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가 평소에 생각한 대로 만든 진열대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것은 가우디의 생애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에우세비 구엘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 때가 26세였는데 구엘은 평생토록 가우디의 후원자가 된다. 구엘은 가우디의 장갑진열대를 보고 찾아왔다가 그의 책상을 보고 한 번 더 감탄을 한다. 그 후 구엘은 가우디를 자기 가문의 건축가로 임명하여 수많은 건축물을 짓고 1910년에는 파리에서 가우디의 전시회를 자신의 돈으로 열어 주었다.

   가우디는 30대에서 60대에 이르도록 별장과 궁전과 공원 그리고 집이라는 뜻의 카사라는 명칭이 붙는 카사 비센스, 카사 칼베트,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같은 집들을 건축한다. 그의 건축물은 자연을 담고 자연을 표현하는 생생함으로 유명하며 곡선의 사용이 특징이다. 그의 작업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부수고 다시 하는 것이었다. 일꾼들도 처음에는 불만을 터뜨렸지만 가우디가 설계도도 없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그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우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대성당이다. 이것은 처음에 성당건축을 맡았던 스승에 의해 건축책임자로 추천되어 가우디에게 맡겨졌는데 그는 이 일을 평생의 작업으로 여기고 돌로 만들어진 성서가 되게 하자.”고 생각했다. 가우디는 그가 죽을 때까지 43년 동안 이 성당을 짓는 일에 매달렸다. 그의 마지막 10년간은 그곳에서 먹고 자며 일꾼들과 함께 지냈다.

   가우디는 생각에 잠겨 길을 가다 전차에 치여, 사흘 후 숨을 거두었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까지 성가족 대성당의 건축을 골똘히 생각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리라. 그가 죽은 지 90여 년이 되었지만 그 성당은 계속 지어지고 있고 관광객들은 완성되지 못한 가우디의 최후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1984년에는 그의 건축 일곱 개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어린 시절 가우디의 어머니가 몸이 약한 가우디에게 하나님이 네게 약한 몸을 주신 특별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 약한 자를 들어 귀하게 쓰시는 그 분이 자신의 집을 그를 통해 짓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의 가우디의 삶은 평범 혹은 그 이하여서 불우하다고 조차 말할 수 있었다. 정식건축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제대로 이해해 주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건축에 대한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고 일찍이 에우세비 구엘을 만나 자신의 건축을 꽃피우고 이제는 20세기의 가장 빼어난 건축가로, 그가 지은 건물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려지고 있다.

   그의 삶에 어려웠던 순간들이 그의 특성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몸이 약해 제대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자연에 쏟았던 애정과 신을 향한 사랑, 삼대를 이어왔던 대장간, 형편상 그가 했던 장인들의 작업실에서의 일들, 풍경화처럼 예술로 여기고 접근했던 작품들이 오히려 가우디를 자연을 담는 건축가가 되게 했다. 주어진 작은 기회에도 최선을 다하여 구엘을 만나고 그로 인하여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다. 확고한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면 꿈을 펼칠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가우디의 생애는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