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나도 아들을 낳았다(라헬)

변두리1 2016. 2. 14. 17:56

나도 아들을 낳았다(라헬)

 

  오늘은 내 생애에 큰 의미가 있는 참 기쁜 날이다. 결혼 전에는 걱정조차 하지 않았고 결혼 후에는 걱정에 지쳐서 포기하고 있었던 내게 잉태가 되고 내 아이를 그것도 아들을 낳은 날이다. 어찌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언니는 아들 여섯에 딸 하나를 낳았고 그 여종이 또 두 아들을 두었다. 나는 겨우 여종을 통해서 아들 둘을 낳았을 뿐이었고 그 아들들은 내 아들이라고 대놓고 말하기가 애매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보기에도 당당한 내 자신의, 내가 낳은 아들이 생긴 것이다.

 

  이쯤 되니 그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들을 갖기에 결혼초기보다 나은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우연히 된 것이라는 설명은 도저히 아귀가 맞지 않고 설득력이 없다. 훨씬 좋은 조건의 수많은 기회가 모두 허사가 되고 체념하고 포기했던 일이 오랜 세월이 지나 이루어졌다. 남편이 꾸준히 간구해 온 것을 그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 초기에는 나도 내 임신을 믿을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 확실한 증거가 내 몸에 나타났을 때 다른 이들에게 넌지시 얘기해 보았지만 그들의 반응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 많은 세월이 흐르고도 내 몸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이들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반신반의 했었다. 왜 그러지 않으랴. 소문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내게로 왔었다. 결국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내가 아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그들은 자신의 눈과 손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으므로 내 임신은 마을의 화제였고 극히 소수를 제외한 부모님을 비롯한 친정집 사람들은 진심으로 내 임신을 축하해 주었다. 남편도 더없이 좋아하고 기뻐했다.

 

  임신이 확인된 뒤로는 왕비 같이 살았다. 조금이라도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았고 임산부와 태아에 좋다는 음식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구해 먹었다. 그렇지만 아이를 갖고 출산을 한다는 의미를 과소평가해 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임산부가 겪지 않을 수 없는,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힘겨운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내게 시기의 대상이었을 뿐인 여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알았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재삼 고마웠고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태중의 열 달도 어느 하루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임신 초기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날들이었다. 출산이 가까워 올수록 두려움은 더해 갔다. 노산에 경험이 없으니 쉽게 낳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남들은 내 걱정에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해산하는 것이고 치러야 할 과정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출산하다 죽는 꿈만도 여러 차례 꾸었다. 깨고 나면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아침이 되어도 일어날 힘이 없었다. 한 생명이 세상에 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낮에도 불안하고 밤이 되면 더욱 심해졌다.

 

  산파들은 몇 번을 우리 집에 헛걸음했다. 어쩌면 그들은 해산이 아님을 알고도 내게 왔었던 것 같다. 경험이 없는 나는 심하게 배가 아프면 남편을 불렀고 그는 산파에게 연락을 했다. 그들은 우리 집과 그 사람을 무시할 수 없어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몇 번 그런 일을 있고 난후로는 아프다는 소리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남들이 다 겪는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민망한 노릇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 정해진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며칠 전부터는 여종 한명이 내 곁을 종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견디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다. 사람들도 때가 되었다고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다른 때와 달리 그들의 움직임이 부산했고 일찍부터 여러 산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몇 번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 지나가고 사람들도 기다림에 지치고 걱정이 깊어져 가는 듯했다. 나는 온몸의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다 빠진 것 같았다. 한낮의 볕도 기울고 문밖으로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산파들이 오는 것을 보고 들로 향했던 이들이 돌아 와 근심스레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한 번 더 허리가 끊어질 듯 죽음을 넘어서는 것 같은 고통을 선사하고서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주변에 박수소리와 애썼다는 말들이 오가고 나는 정신을 잃었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아이가 밖으로 나오니 그래도 살 것 같았다.

  남편이 내게로 다가와 고생했다고 위로를 한다. 아들이란다. 힘들고 고단한 중에도 반갑고 고맙다. 아들의 이름을 요셉으로 한단다. ‘그분이 다른 아들을 더하시기를 원합니다.’라는 것이 이름 뜻이다. ‘이렇게 죽을만큼 힘 드는 일을 또 하라고,’나도 모르게 서러움의 눈물이 흐른다. 내가 얼마나 아들 갖기를 원해왔던가를 생각하니 뭔가를 몰랐어도 너무 몰랐었다. 남편은 내가 낳은 우리의 아들을 들어 올려 내게 보여준다. 눈을 꼭 감고 얼굴을 찡그리고 울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