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정말 어렵다
사는 게 정말 어렵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옆에 누워있는 이가 신부가 아닌 그녀의 언니였다.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속에서 끓어올랐다. 시각을 분별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옷을 챙겨 입었는지 모른 채 장인의 방문을 박차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소리쳤다. 예상하고 있었던 듯 장인은 마을의 노인 한 분과 함께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앉게나, 그래, 첫날밤은 잘 치렀나?”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장인이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내 기세를 꺾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때 내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분노에 찬 모습이었으리라. 그 아침 그 순간을 위해 자리한 노인이 한 마디 했다. “자네가 외부 사람이라 잘 모를 수 있네만 어디나 그곳의 전통과 관습이라는 게 있지. 순서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고 관습이라네.” 혼란스러웠다. 무언가 큰 손해를 보고 사기를 당한 것 같은 피해의식이 너무도 강했다. “어찌되었든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 말을 장인이 받았다. “내, 자네 심정을 알고도 남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언니가 출가하기를 한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나. 우리도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일세.” “제 신부는 어디 있습니까, 이 일을 알고나 있습니까?”장인은 칠일을 채운 후에 약속한 신부를 맞으라고 했다. 이번 일로 자신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 노인을 증인으로 해서 서면으로 작성해 주겠단다. 그때까지 분을 삭이지 못한 나는 평생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치고 방에서 물러나왔다.
집주변을 한 바퀴 돌고 신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면서 무안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나만 빼고 모두가 사전에 이 일을 알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가까운 이들은 사전에 알았고 다른 이들은 우리가 신방에 든 후에 알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도 동생과 내게 미안하고 남들에게 창피하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들의 의견이 워낙 강해서 거부할 수 없었단다. 또 내가 유능하니 몇 명의 아내를 둘 것이라 자신이 유일한 부인이 아닌 여럿 중 하나라 여기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부모님들이 동생도 기간이 지나면 내게 아내로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동생도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들어보니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흔쾌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녀의 동생은 칠일 후에 돌아올 거란다. 그녀도 참 안됐다.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모든 이들의 축복과 신랑의 사랑 속에 시작해야 할 결혼이 불안과 죄스러움으로 시작되는 것을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오늘부터 며칠은 할 일이 없다. 갓 결혼한 신랑 신부에게 허락된 휴식의 기간이다. 그런데 이 기간이 오히려 민망하다. 서로 할 이야기가 없고 할 일도 마땅치 않다. 한 공간에 머무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혼자 있고 싶다. 내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말없이 혼자 방을 빠져나와 마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한적한 곳을 오랫동안 걷고 싶다. 이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 마을을 에둘러 묘지에 이르렀다.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혼자 있으니 조금은 차분해지는 것 같다. 어젯밤부터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났던 것인가. 이곳에서 내 위치는 어디쯤이고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왜 고향에서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을까. 부모님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실까. 어머니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일을 들으신다면 무어라 말씀하시려나. 그런 와중에도 어제부터의 긴장과 피로 탓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이곳에서 나는 약자임에 틀림없다. 이 상황을 피해 도망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 삶의 근거로 알고 살아온 이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서 살아야 한다. 칠일 후에는 원했던 아내를 맞을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언니인 그녀도 특별히 정이 가지 않아 그렇지 흠잡을 데 없는 여인이다.
마을로 돌아오다 아는 이와 마주쳤다. 그는 의외라는 듯 새신랑이 신부와 함께 있지 않고 어디를 혼자 갔다 오느냐고 물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 알고 있는 눈치다. 내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것이 마을의 전통이고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간다. 어색하게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저녁을 먹으러 가잔다. 많은 이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나. 이 사람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인가. 아내로 대하자니 마음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그 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을 듯하다. 이것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산다는 것이 이렇게 갑작스런 일이 생기고 대처하기 어려운 것인가. 아무 일 없다는 것이 실제로는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