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왜 이런 일이(아비아달의 탄식)
여호와여, 왜 이런 일이(아비아달의 탄식)
나는 아비아달로 아히멜렉의 아들이다. 아버지 아히멜렉은 놉땅의 여호와의 제사장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밖에 모르는 소심한 분이셨다. 며칠 전 아버지와 우리가족을 비롯해 다른 제사장들 성소를 돌보는 이들 그 모든 가족들을 포함하여 놉땅의 사람들과 가축들까지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다행이 나는 창고 깊숙이 들어갔다가 군사들을 피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다윗에게로 피난해 와 며칠을 지냈다. 나는 대부분의 일들을 소상히 보았지만 왜 이런 참사가 빚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이 없던, 하늘이 맑은 나른한 오후였다. 아버지는 저녁 제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때 평온을 깨고 갑자기 다윗과 칠팔 명의 군사들이 들이 닥쳤다. 다윗은 아버지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었지만 아버지는 덜덜 떨고 있었다. 다윗은 왕의 특명으로 이곳에 왔는데 군사가 조금 많다며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명령과도 같았다. 아버지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으면서 제사 후 물러낸 떡밖에 없고 그것은 성적(性的)인 부정(不淨)이 없어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다윗은 걱정하지 마시라며 떡을 부하들에게 가져가게 하고는 다시 말하기를 왕명이 원체 급하여 무기를 챙겨 오지 못했다면서 줄만한 무기가 없는가 묻고 골리앗의 칼이 있다고 하자 그것을 가지고 갔다.
그들이 돌아갈 때 입구까지 배웅을 했는데 부속건물 모퉁이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작은 눈에 뾰족 턱을 가진 우락부락한 사내를 보았다. 성소로 돌아오며 그 얘기를 했더니 사울왕의 가축을 돌보는 도엑이라는 인물인데 몹시 거친 사람이니 조심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한숨 돌리고 마음이 가라앉자 조금 전에 다녀간 장수가 다윗으로 사울 왕국의 실세중 하나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어떻게 그걸 아실까 의아했는데 역시 한 발 늦은 정보로 그때 다윗은 왕의 시기(猜忌)를 받아 쫓겨 다니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왕궁에서 사람이 와서 아버지를 비롯한 이곳의 모든 제사장 여든 다섯 명에게 기브아로 곧바로 오라고 전하고 돌아갔다. 전날은 왕의 장수들과 우리 지파실무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도엑도 왕궁재산 현지 관리자 자격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일행이 기브아에 있는 왕궁으로 간 날 저녁때에 우리 마을로 군인들이 난입(亂入)해서 사람과 가축들을 가리지 않고 죽였다. 한동안 온 마을은 비명으로 가득 찼고 피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창고 안쪽에 깊숙이 들어갔었는데 두려움으로 온 몸에 힘이 빠져서 한걸음도 옮길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한 떼의 사람들이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들리지 않았다. 온 마을이 정적이었다. 조심스레 밖으로 나오니 피 냄새가 코를 찌르고 보이는 곳마다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너무도 두려워서 잠시도 그곳에 있을 수 없어 사방이 캄캄했지만 별빛에 의지해 서쪽으로만 걸었다. 피곤하여 한곳에서 쉬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해가 돋았고 그곳을 “가드”라고 했는데 그곳 사람들이 우리 마을의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들에 의하면 다윗과 그 일행에게 베푼 아버지의 호의를 도엑이 왕에게 보고하자 사울 왕이 대노하여 아버지를 비롯한 제사장 여든 다섯 명을 살해하고 우리 마을도 도엑과 군사들을 시켜 폐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울은 아버지가 다윗을 도와줌으로 자신에게 해를 끼쳤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 의미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고 한다. 그 소식은 군사들을 통해 각 지역으로 신속히 전해졌다고 했다. 그들은 다윗이 현재 그일라에 있는데 곧 사울이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을 잡으러 갈 것이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하더라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일라로 향했다. 다윗을 만나 우리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더니 그날 도엑을 보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며 그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으니 미안하다면서 사울에게 쫓기는 같은 처지니 함께 있자고 했다. 다른 방도도 없어서 다윗에게 합류했다. 그러나 다윗과 함께 하는 것이 결코 안전한 것 같지는 않다. 이곳이 이미 알려진 셈이니 다른 곳으로 피해야 하는데 어디로 간다 해도 수백의 사람들이 움직여야하니 거처가 드러나지 않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때그때 처리할 일들이 많아 몸은 바쁘지만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변을 당한 가족과 이웃들이 생각나고 도엑과 사울 왕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강해지고 커져만 간다.
하나님께서 이번 사건을 통해 사울이 어떤 부류의 인간임을 만천하에 공개하셨다. 여호와를 섬기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고 오히려 대적자임을 드러냈으니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나라의 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 아닌가. 사무엘선지자가 버렸다고 선언했을 때에 이미 왕의 자격을 잃은 것인데 쫓아내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당했고 이번 사건도 겪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여호와여 속히 이 광인을 왕좌에서 몰아내시고 죄 없는 이들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이 백성 모두가 무고한 고통을 끝없이 당하고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