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들꽃처럼

변두리1 2015. 9. 22. 17:29

들꽃처럼

 

 

  얼마 전 비급 공업사에서 차량 도색을 했다. 차가 오래되어 외부에 조금씩 녹이 슬어가니 보기 민망했다. 잘 모르기도 하려니와 까딱하면 찻값보다 도색비가 더 들 것 같아 흉하게나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손을 본 것이다. 차를 바꿀 형편도 되지 않거니와 날 위로삼아 한 것 같은 아내의 말에 공감이 되기도 했다. 작은 교회 목회자가 좋은 차를 타는 것이 흉이지 헌 차를 타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나도 차에 이동수단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더러는 차가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 하고 그런 듯도 하지만 마음에 담고 싶지 않다.

 

  도색을 하고 두세 주가 지났을 무렵 조금 높은 곳에서 보니 흙색으로 녹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았다. 설마 얼마나 됐다고. 시공하는 분이 특별히 신경 써서 해 주었다고 했는데,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분명했다. 연락을 해서 보수처리를 하기로 했다. 그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명절 전에 한다고 며칠 전에 다녀왔다. 시공을 하는 데가 번화한 곳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있어서 차를 맡기고 주변 마을을 걸었다. 가까운 곳에 진입로가 아름답고 마당이 예쁜 집이 있어 나와 아내가 길가의 꽃과 마당을 구경하며 어정거리니 주인인 듯한 분이 런닝셔츠를 입고 우리를 보고 계셨다. 아내가 꽃과 정원이 너무 아름다운데 구경을 해도 되냐고 하니 구경하란다. 은근히 그러기를 바란 어투다. 전문적인 식견이 있으신 것 같다고 하니 그렇지는 않다면서 집 가꾸는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작은 연못도 있고 여러 수종의 나무와 꽃들이 있다. 꽤 넓은 밭이 있어 주말이면 가족들을 데리고 자녀들이 찾아온단다. 늙어서 이런 것 말고 뭐 할 것이 있냐는 말 속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지나는 이들 중에 마당을 잘 가꾸었다고 얘기들을 하고 들여다보는 이들도 적지 않단다. 그분의 노고가 보이는 것 같다. 왜 힘들지 않으랴. 날마다 오전에 하는 일이 꽃과 나무들과 밭작물을 돌보는 것이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애써서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니 얼마나 근사한 봉사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을 잡아 끈 것은 진입로에 자리 잡은 작은 젖꼭지 모양의 빨간 꽃들이었다. 어디선가 본 들꽃인데 생각나지 않았다. 그 꽃이 한두 송이가 아니고 삼십여 미터는 족히 될 거리를 한 쪽으로 도열하듯 메우고 있으니 환영받는 느낌이 들었다. 수수하지만 그렇게 예쁘다고 할 수 없는 꽃들이 무리지어 함께 있으니 정감이 가득하고 인상이 강렬했다.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돌아오는 길에서는 연한 노란색의 작은 꽃을 보았다. 누가 그토록 은은한 색깔을 낼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길가 한쪽에 툭 솟아나 내 마음에 맑은 종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무슨 꽃이 저리도 예쁘고 아련할까. 눈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가니 그곳에는 눈에 익은 씀바귀 잎사귀들이 보였다. 처음으로 씀바귀 꽃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전에 그 꽃을 보았는지 모른다. 마음 없이 보는 것은 보지 않는 것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디서 구하든 우리 작은 꽃밭에 씀바귀를 심어야겠다. 마음에 들어왔으니 여러 곳에서 자주 눈에 띄겠지만 울안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보는 것만 하겠는가.

 

  그곳에 그 꽃들을 보러 간 것은 아니다. 원래는 그럴 계획조차 없었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보다 더 큰 덤을 얻었다. 하루 종일 그 꽃들이 내 마음에 피어있고 마음이 즐거웠다. 분주한 중에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몇 군데 여름 들꽃 사진을 뒤지니 그 마을에서 본 빨간 꽃이 눈에 띄었다. “엉겅퀴 꽃”, 그것이었다. 어릴 적 살던 곳에서 자주 보았던, 눈에 익은 꽃이었지만 잊었던 그들을 오늘 다시 만난 것이다. 오십 년 전 친구를 다시 만나면 그토록 기쁠까. 내게는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내 천성이 덤덤하고 감정이 무디어 깊이 사귀고 정을 준 친구가 없어 그런가. 오래된 친구를 만나도 몇 번 지나면 다 그 얘기가 그 얘기 같고 추억나누기도 시큰둥해진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한결 같은 모습으로 대해주는 저 들꽃들이 편하다. 내 자신이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자각이 있어 난감하면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내 삶에 엉겅퀴와 씀바귀 같은 이들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세월과 함께 마음이 자연으로 간다. 제자리에 다소곳이 피어나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소박한 들꽃들처럼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