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저녁의 해후》
박완서의 《저녁의 해후》
-어쩔 수 없는 반쪽에 대한 쓸쓸함-
1. 글쓴이 박완서는(1931.10∼2011.1)
대중인기작가이면서 문학성도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호수돈여자고등학교로 전학했고 해방이 되자 다시 숙명여자고등학교로 돌아왔다. 이때 한말숙·박명성 등과 사귀었으며, 담임교사인 월북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빠와 삼촌이 죽자 생계를 잇기 위해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했으며, 이때 화가 박수근을 알고 그의 그림에 감명받았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나목 裸木〉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이어 〈부처님 근처〉(현대문학, 1973. 7)·〈주말농장〉(문학사상, 1973. 10)·〈겨울나들이〉(문학사상, 1975. 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76년 〈동아일보〉에 〈휘청거리는 오후〉를 연재했다. 수필집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살아있는 날의 소망〉(1982) 등이 있으며〈서 있는 여자〉(1985)·〈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등의 소설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저녁의 해후〉는 1984년 3월 〈현대문학〉에 발표했다.
40세의 늦은 나이로 출발하여 20년 동안 100편 안팎의 소설을 썼으며 많은 문제작품을 써냈다. 6·25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사회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고 개성을 잃어가는 순응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1981년 이상문학상,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1993년 현대문학상, 1994년 동인문학상, 1999년 만해문학상, 2000년 인촌상, 2006년 호암예술상을 받았다.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하다 2011년 1월 세상을 떠났다. -DAUM백과사전-
2. 작품 내용은
주인공 송여사의 남편은 반신불수에 기억력도 깜빡거린다. 부인이 죽자 제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재혼을 하고 동생의 딸인 조카는 이모인 송여사가 삼 년째 데리고 산다. 어머니가 없는 것 외에는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나이가 들어가는데 결혼을 못하고 있다.
신식처럼 맞선을 받아들이면서도 궁합이 강한 구속력을 행사하는 모순 속에서 조카 영애가 선을 보는 자리에 송여사는 어머니 역할로 자리를 함께 한다. 그곳서 만난 청년의 아버지가 송여사의 처녀시절에 양가의 허락 하에 사귀다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진 조노인이다. 그도 이제는 늙어서 놋대접을 뒤집어 쓴 것처럼 대머리가 되었고 이도 틀니를 하고 있다. 찻집을 나와 헤어지려던 그들은 조노인의 제안으로 예전 고향 송도를 떠올리게 하는 〈용수산〉이라는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송도음식타령을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 끝에 지난 시절 얘기가 나오고 조노인이 궁합을 들먹이자 송여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한 번 더 사정을 하는 조노인을 따라 송여사는 임진각까지 동행을 하고 거기서 조노인의 고향 송도에 대한 강한 애착과 그리움을 본다. 23.5km라는 팻말에 대해서도 역정을 내고 고려문화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주장을 한다. 길바닥에 송도의 지도를 그리고 골목과 고개와 다리들의 이름을 줄줄이 풀어낸다.
집에 돌아오니 조카는 돌아오지 않았고 반신불수인 남편만 누워있다. 평소엔 살만 잠깐 스쳐도 질겁했던 불수의 반신을 온기가 돌아올 때까지 주무르며 잃어버려 부재하는 것에 대한 애달픔을 생각한다.
3. 읽고 나서
반신불수로 기억조차 깜빡거리는 남편과 전쟁으로 나뉘어져 왕래조차 못하고 이제는 기억조차 흐려져 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져 보인다. 조노인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이 갈수록 강해져 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송여사처럼 그냥 덤덤한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세월과 함께 점차 잊히는 것이 정상이고 또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리라. 세월이 흘러 전쟁 때에 10대 초반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팔십을 바라보고 있다. 이 땅의 구성원들이 바뀌고 애증(愛憎)의 감정도 식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객관화되어 이제는 꼭 통일을 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간다. 하지만 구구하게 논리적으로 따지려 하기보다 우리가 이제 지구상에 갈 수 없는 나라가 몇 개나 되는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와 무관한 나라만큼이라도 원하는 때에 오갈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피가 통하고 소통이 되어야 반신불수라도 풀리고 부드럽고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