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지키시리라(이삭)
그분이 지키시리라(이삭)
이렇게 우리 가문이 소용돌이 칠 줄은 몰랐다. 집에 스산한 찬바람이 인다. 에서의 서운함이 쉬 풀리지 않고 있다. 사냥도 가지 않고 말도 없으니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다. 이 팽팽한 긴장을 풀기위해 아침에 야곱이 하란으로 떠났다. 신앙심 좋은 아내를 찾으러 간다고 했지만 진짜이유는 형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한 것이다. 드러내 말하지 않을 뿐 가족 모두가 안다.
안됐다. 며칠 전에 제 어미가 등을 떠밀어 나를 통해 축복기도를 받고 가문의 후계자가 되더니 그 기쁨을 느껴볼 사이도 없이 형의 시기 질투에 어쩔 줄 모르더니 외가로 피신을 한다. 야곱을 보내는 아내의 모습도 애잔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길을 터덜터덜 나서는 아이도 불쌍하다. 동생이 집을 떠나 멀리 하란에 갔다는 얘기를 듣는 맏이도 애매한 표정이다. 사냥터에서 돌아와도 동생이 있어 한두 마디 거친 말이라도 던지고 염려 섞인 말이라도 들을 수 있었는데 집에 없다니 허전해 하는 눈치다. 툭 터놓고 말하지 않아도 동생이 누구 때문에 외가로 갔는지 맏이는 너무도 잘 안다.
맏이의 성격을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과격해 지기는 해도 그것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길어야 석 달 아주 오래 가봐야 반년일 게다. 아내는 숨 막히는 집안의 분위기는 두 번째고 정말로 믿음의 며느리를 얻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고생을 모르고 살던 아이가 외가까지 가는 중간에 맞이할 어려움들을 어떻게 잘 극복할지 걱정이다. 그래도 맞닥뜨리면 당황스럽고 고생은 되겠지만 견뎌 낼 것이고 그만큼 단단해 질 것이다. 한 가닥 마음이 놓이기는 몸 건강하고 천성이 착하고 참을성이 있고 악착스러운 면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그 아이를 택하신 분이 늘 지켜주실 것이라는 거다.
당황스럽기는 하리라. 가문의 후계자가 되고 축복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켜주실 것이니 더 안정되고 탄탄한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반대로 정든 집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가야했으니 마음이 좋을 리는 없을 게다. 편한 환경보다는 역경 속에서 의지할 이들이 있는 곳보다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긴 세월이 아닐 것이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은 왜 그 아이를 가문의 후계자로 삼기를 원하셨을까. 마을 사람들이나 나를 아는 누구도 당연히 맏이가 가문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도 결국은 그렇게 되리라고 여겼다. 아내와 그 문제로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항상 그래도 태어난 순서를 바꿀 수는 없으니 불안하기는 하고 단점도 있지만 에서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은 이상했다. 아내도 당돌하리만큼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 야곱을 밀어붙였다. 나로서도 어느 순간 에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니 조금 후부터는 야곱이라는 직감이 왔다. 그런대도 오히려 이 아이라는 느낌과 그 일을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시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내 손이 저절로 올라가는 듯했고 내가 생각지 않았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축복을 마치고 나서는 내 마음에 걱정보다는 기쁨이 솟아나고 있었다.
아이를 보내자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주저 없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게 아이에게 더 유익할 것 같고 그 분이 원하시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분이 그 아이를 특별히 정하신 곳으로 데려다가 가문의 지도자, 그 분의 백성들의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과 자질들을 몸에 익히도록 필요한 훈련을 시키시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어려움은 그냥 어려움이 아니다. 더구나 그분이 허락하는 것들은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야곱은 나이는 들었지만 경험은 적다. 세상 속에 부딪치면서 몸으로 깨우쳐야 하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께 인도를 받는 믿음의 강한 훈련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 훈련을 가나안에서는 시킬 수 없다. 나와 제 어미가 함께 있으면 안쓰러워서 세게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아시니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우리가 도울 수 없고 아이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가르치시는 것이리라.
그냥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문제를 통해서 몸으로 겪고 체질화되어야 하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게 마련이다. 큰 고생을 하지 않고 큰 사람이 된 이가 누가 있는가. 내 아버지 아브라함이 대단한 것도 그토록 어려운 일들을 겪고 그분을 철저히 의지하는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를 흉내도 내지 못하는 이유도 고생의 양이 아버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간이 길든 짧든 야곱이 많은 고생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그분이 주시는 어려움 그분이 극복하게 하시고 가르쳐 지도자 삼으시고 또한 넉넉히 지키시리라. 그분께 맡기니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