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교실의 인간관계
탁구교실의 인간관계
건강한 생활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취미가 탁구다. 그것도 오랜 세월 계속하다 보니 집에서 가까운 한 탁구교실에 속하게 되었다. 탁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 한 곳에서만 운동을 해도 낯익은 사람들을 빈번하게 만나게 된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친숙한 이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 탁구로 아는 사람들은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식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일이 드물고 여러 번 만나서 얼굴이 익숙해지고 서로 운동하며 가까워진다. 같은 취미로 만나니 이해관계로 크게 얽힐 리도 없고 직업이나 연령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탁구실력이다. 웬만하면 서로 어울릴 수 있지만 전혀 기본이 없거나 차이가 너무 크면 지속되기 어렵다.
길게 보면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탁구교실에 등록을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전체 인원에 큰 변화는 없다. 한두 달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등록을 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굳은 결심을 하고 기대를 걸고 용구도 준비하고 시작을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탁구실력이 좋으면 그런대로 상대해 주려 하지만 초보적 수준이고 혼자면 같이 상대해 줄 이가 만만치 않다. 분위기도 익숙하지 않고 사람들을 잘 모르니 한 곳에 앉아서 남들 운동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일쑤인데 그것이 또 본인에게는 아주 어색하다. 누가 말을 걸어 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구경할 경기도 없는 애매하고 난처한 상황이 되기 쉽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두세 번 이런 경험을 하면 계속할 용기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세월이 오래된 나도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읽을거리를 가지고 다닌다. 어색함도 달랠 수 있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것은 없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건강에 좋은 운동으로야 달리기와 줄넘기가 가장 좋지만 그것들은 웬만한 의지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재미가 별로 없어서 한 번 비가 오면 달리기는 한동안 중단되기 쉽고 줄넘기도 하루 거르면 며칠은 그냥 넘어가기 일쑤여서 계속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도전하지만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인데 범인(凡人)들은 작심삼일이 되기 쉽다.
그런가하면 상대하기 힘든 이들도 있다. 개인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는 듯 상대를 가르치려 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탁구교실에 가르치는 코치가 있으니 다른 이들은 그냥 운동을 하면 되는데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어느 곳이나 대개 한둘은 이런 이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강한 승부근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몇 번 본 것도 아닌데 한 판 하자고 하는 이들이다. 상대의 취향을 배려해 주면 서로가 편한데 자신의 방식을 밀어 붙이니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이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이들도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 탁구교실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런가하면 전체를 생각하고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성숙한 생활자세로 매사에 임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분들을 뵈면 편안해지고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난다. 소외된 이들을 먼저 챙기고 인사하고 말을 건네며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 작은 일 하나에서도 인격과 성품이 묻어난다. 그들은 함께 할 때에는 표시가 나지 않으나 부재 시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느낀다.
“쌓기는 어렵고 허물기는 쉽다.”는 말처럼 이러한 분들의 오랜 수고와 노력으로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져도 한 두 사람의 지각없는 행동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이 아쉽다. 많은 경우에 거칠고 목소리 큰 이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면 조용히 노력하던 이들은 말없이 사라지고 그 공동체는 깨어지고 만다.
약간의 융통성이 있으면 취미중심의 인간관계는 직장의 상하관계보다 한층 부드럽고 느슨해서 삶이 더욱 풍성하고 윤택해질 수 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세상살이라고 하면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정겨운 일인가. 건강도 챙기고 삶도 풍성해지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종횡으로 확대되는 즐거움이 탁구교실을 통해서 이루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