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고통 그리고 일상

변두리1 2015. 8. 2. 21:51

고통 그리고 일상

 

 

  큰 애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체한 것 같다고 해서 약도 먹고 손발을 따 봐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하고 약을 받았다. 집으로 오는 중에도 구토가 나고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한다. 의사 말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심하게 긴장하면 기도로 들어갈 공기가 식도로 들어가는 수가 있는데 그럴 때 배에 가스가 차서 심한 통증을 겪게 된다고 한다. 제 방에 들어가 간신히 쪼그려 눕는 것을 보고 잠을 잘 못 잘 것을 알면서도 조심해서 잘 자라고 하고는 내 방으로 돌아온다.

 

  무엇 때문에 긴장을 하고 스트레스를 그토록 받았을까. 하기는 이 시대에 청년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 외교부 세미나에 한 번 갔다 오더니 꿈이 외교 일을 하는 것이 되었다. 대학 때부터 공부하고 시험보고를 되풀이 했지만 합격을 못해서 스스로는 고민이 많았는가 보다. 부모로서도 미안하기는 덜하지 않다. 자식의 진로에 맞는 대학을 보냈어야 했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해 국립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주변사람들의 눈치도 보이고 동생들 생각을 하게도 되었으리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믿는 곳이 있으니 결과적으로 다 잘될 것이다. 더 다지고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어찌할 수 있으랴.

  큰 애는 유독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며 성장했다. 자기 나름의 분명한 주관이 있었고 자아정체성도 확실해서 부모와 자주 부딪치고 남의 의견에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그러나 힘든 그 시기를 통과한 후로는 자기 할 일을 분명히 하고 이해심도 넓어져서 부모로서는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런저런 실패도 많이 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며 더욱 단단해 졌으리라. 동생들이 다 차이가 나고 개성들도 강하지만 언니를 보고 간접경험을 하고 충고도 받고 부모 역시 이미 경험이 있어서 그들은 어렵지 않게 사춘기를 넘을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 늘 있어도 동생들을 잘 이끌고 다독여서 서로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 고맙고 보기 좋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것이 참 많다. 남들처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여유 있게 성장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추억이 될 만한 경험들을 가족들이 함께 만들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긴 세월에 어디 한 곳 가족끼리 단란하게 다녀온 일 없고 소중한 청소년기에 좁은 시장골목길 벗어 난적 없으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부모에게 불만도 많았으리라. 왜 남들 다 입고 걸치는 비싼 옷 명품들을 너희만 모르고 또 갖고 싶지 않았으랴. 친구들에게 보란 듯이 한 턱 내고도 싶었을 것을, 그러지 못함이 얼마나 답답했으랴. 그러나 이제는 부모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세상이 무척이나 쉽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정말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아 가고 있다.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힘든 일인가. 큰 애는 외교적인 시험을 계속 공부하고 준비하다가 요즘에는 여기저기 원서도 넣어 보고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공무원시험도 응시하는 눈치다. 둘째는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는데 선발인원이 적어 만만하지가 않고 막내는 대학 마지막 학년을 다니고 있어서 역시 취직에 적지 않은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도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지만 누군가 하나라도 조속히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받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압박감과 긴장의 강도가 어느 정도 나이에 비례하는 것 같다. 그것이 오늘 큰 애에게 통증으로 나타난 것일 게다. 그러나 이제까지도 힘든 줄 모르고 견뎌왔고 잘 지내왔는데 길어 봐야 한 두 해, 아무리 어려운들 참아내지 못하랴, 부모 된 나와 아내는 큰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 가정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그 분을 바라보면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힘이 솟는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큰 애가 괜찮아졌다며 밝은 얼굴로 나타났다. 캄캄한 밤이 있어 아침이 더욱 귀하다. 삶이 태풍도 지나가고 폭우도 쏟아지고 가뭄도 들고 흉년도 있는 것이지 어떻게 평온하기만 바랄 수 있을까.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조심도 하고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주변에 좋은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지 싶다. 아이들이 아프면서 크듯이 어른들도 힘든 일 겪으면서 한 단계씩 인생의 깊은 맛이 들어간다. 고통의 밤이 지나고 다시 조용한 아침을 온 가족이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기쁘다. 고통을 통과한 후에야 고요한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