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이 길이 맞나

변두리1 2015. 7. 16. 18:58

이 길이 맞나

 

 

  오래 전 한 작가가 작은 호숫가에서 두 해 두 달을 살고 그것을 기록한 책을 읽었다. 그가 혼자였다는 면도 있었지만 쓰임새를 줄이면 적은 경제력으로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글을 대하면서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인류의 진보와 시장경제를 다시 돌아보았다. 거대한 블랙홀처럼 이 시대를 삼키는 시장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전 세계가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거 때마다 이제는 경제가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다.

 

  이 경제문제의 한 가운데에 시장(市場)이 있다. 중학생만 되어도 익히 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이 자본주의의 중심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언가를 사려는 이들이 있으면 그것을 생산해 팔려는 이들이 생긴다. 사업가들은 항상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예민하다. 상품의 공급과 개량이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진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인류전체를 염두에 두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편리와 신체적 쾌락을 충족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여름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나 나무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하거나 넓은 나뭇잎이나 손바닥을 사용하여 부채질을 했으리라. 이것을 보고 눈치 빠르고 재주 좋은 이들이 부채를 만들어 팔기도 했을 것이다. 전기가 공급되자 선풍기가 등장했다. 재력 있는 이들이 에어컨을 사용하자 하나 둘 그 대단한 편리함에 에어컨을 들여놓았다. 나무그늘에서 부채로, 선풍기를 거쳐 에어컨으로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열린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 향하는 것이다. 지역공동체에서 가정으로 그리고 개인으로 옮겨져 간다. 나무그늘과 부채는 에너지 소비가 없다. 그러나 선풍기에 이르면 외부에너지를 써야 하고 에어컨은 수십 배에 이른다. 그 전력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상식으로 판단하면 선풍기와 부채를 향해 가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질주한다. 어디에 그 이유가 있는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개인적 편리와 신체적 쾌락의 충족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류가 그 결과로 얻은 것은 냉방병이라는 반갑잖은 질병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인류에게 두 다리는 효과적인 이동수단이었다. 최근의 200여 년을 제외하면 기계의 힘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을 몰랐다. 탄생에서 최근에 이르는 길고 긴 세월을 자신의 두 다리나 짐승을 타고 이동했을 뿐이다. 인류사로 보면 최근세에 차가 등장한다. 차의 등장이후로 인류의 생활모습은 혁신적으로 달라졌다. 자동차로 대표되는 외부의 힘을 이용하는 탈 것들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하고 차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자동차의 증가를 이끈 데에는 도로의 확충이 한 몫을 했고 그 배후에는 국가라는 세력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자동차는 본래의 기능 외에 부()의 과시가 추가되었다. 자동차의 출현은 사람들의 이동 폭을 넓혔고 막대한 자연의 파괴를 앞당겼다. 오랜 기간 걸어 다니던 습관이 차를 통한 이동으로 바뀌면서 운동부족을 가져왔다. 차를 통한 빠른 이동이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시간적 여유와 자유를 주었는가. 오히려 더욱더 바빠졌을 뿐이다. 도로를 메울 듯이 차가 늘어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개인적 편리와 신체적 쾌락의 추구였고 그것을 부추긴 것은 시장이었다. 이성을 가지고 조금만 신중히 사유(思惟)하면 자동차가 인류전체에게 유익보다는 큰 피해를 끼치리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대의(大義)가 개인적 편리와 쾌락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도 개방된 공동체에서 폐쇄된 단일기능공간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문명이 앞선 나라를 선진국이라 부른다. 그런데 선진국 국민들의 삶의 행복정도는 오히려 미개한 나라에 뒤처지고 있다. 선진국 국민들 사이에 빈부의 격차가 큰 요인은 아닐까. 밑바닥을 사는 이들의 형편은 어디나 비슷하다. 미개하다고 불리는 이들은 빈부 간에 차이가 크지 않다. 에어컨과 자동차가 없기는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함께 하는 넓게 열린 공간이 있다. 반면에 선진국의 삶은 닫혀 진 개인적 공간일 뿐이다.

  인류적 관점에서 어디가 더 바람직한가를 쉽게 가려낼 수 있다. 문명사회보다 오히려 미개한 곳에 희망이 있다. 그러면 인류가 향하여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깊은 의문을 품는 것이 마땅하다. 이 의문에 대한 확신과 해답이 있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 시장이다. 개인적 이익의 추구에 기반하고 있는 이 시장의 달음박질을 멈추게 하거나 방향을 바꾸게 할 거대한 힘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으로서의 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느낌이다.

 

  인류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가에 강한 의문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