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나의 스승 찾기

변두리1 2015. 6. 2. 23:51

나의 스승 찾기

 

  며칠 전 함께 오카리나를 배우는 이와 둘이 우리의 스승이 살고 있는 보은에 다녀왔다. 출발부터 돌아 올 때까지 인생에 있어서 스승이라는 의미를 거듭 생각해 보았다. 내 경우를 보아도 학창시절에 직접 가르쳐 주신 선생님만 헤아려도 백여 분이 넘을 듯하다. 그 분들 가운데 내 인생에 잊지 못할 큰 영향을 주신 스승은 얼마나 될까? 돌이켜 보니 서너 분밖에 꼽을 수 없다. 대부분 훌륭하신 분들이었을 터인데 내 삶의 스승으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나름으로 스승의 요건을 추려 본다. 스승이니 해당 분야의 전문성은 필수이고 인격적인 감화가 있어야 하고 제자에 대한 배려와 서로의 소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현대처럼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사회에서는 공교육의 선생님만을 생각할 수 없고 또 사제관계를 통해서만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아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 곧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에게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 했으니 찾고 다가가면 스승이 많이 있으리라.

 

  내 스스로의 요건에 맞추어 학창시절의 스승으로 여기는 분은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시다. 그 분은 담임선생님도 아니었는데 나에 대한 배려와 서로의 소통이 있었다. 당시에는 고교 평준화 전이어서 중학교에도 야간자습이 있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집에 가고픈 아이들이 대거 야간자습을 하지 않고 도망을 갔다. 그 후에 그 일에 대해 추궁이 있었는데 도망간 학생들을 조사하다가 내가 끼어 있음을 보고 다 도망간 것과 같다고 더 이상 묻지 않고 넘어 갔다. 나에 대한 무한인정(無限認定)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 후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선생님을 찾아뵙고 진로 상담을 한 일이 있다. 그 때 그 분의 첫 마디가 잊혀 지지 않는다. “선생님이야, 처음 볼 때부터 선생님이었어.” 그런데 나는 사범대를 졸업하고도 목회자가 되어 있다. 그 분 영향인지 지금도 목회자를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믿고 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아직도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나에게 스승의 역할을 해준 또 한 사람은 신학을 같이 한 나이가 나 보다 열 살 쯤 많은 동기생이다. 그가 스승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못했었는데 사제관계를 확대해 보니 분명히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일에 지나치다고 느낄 만큼 개입을 하고 해결책을 찾아내고 함께 처리하곤 해서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다른 저의가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고 그 어떤 저의도 없었다. 자신의 일에도 철저해서 같은 수업을 들어도 다른 이들이 평균적으로 3-40쪽 정도 노트정리를 하면 그 분은 200 여 쪽이 되었다. 다른 책에서 복사해 붙이고 부교재를 정리해 필기하기도 해서 급우들로부터 혼자만 좋은 성적을 받으려 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본인은 오랫동안 너무도 하고 싶었던 공부라서 주체할 수가 없다고 했고 그 모습도 학교생활 내내 이어졌다. 주위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만큼 배려와 관심을 베풀어 주었다. 한 번은 이야기 중에 본인이 수고해서 다른 이들이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다면 어떻게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해서 그의 인생관의 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삶의 순간순간에 그의 말과 행동이 그리워지고 닮고 싶어진다.

  내 삶의 결정적 스승은 그 분의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시다. 그 분은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분명히 아셨고 그토록 중요하고 힘든 인류사적인 책무를 정면으로 돌파하여 완수하셨다. 그 분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피하거나 에둘러 행하지 않으시고 그 순간에도 제자들을 배려하시고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그 분이 나를 부르시고 감동케 하셔서 내 의식구조와 생각이 그 분께 있다. 태양을 정점으로 별들이 돌듯 그 분을 중심으로 내 삶을 형성해 가기를 원한다. 삶의 중요한 고비 마다 그 분의 말씀을 따르고 슬픔과 기쁨의 순간을 함께 하니 스승과 제자가 함께 가는 사제동행(師弟同行)을 너머 그 분 안에 살기를 원한다. 그 분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다른 어떤 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지나친 허풍이요 신성모독이지만 그 분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요 거짓말이 된다. 그 분의 삶은 한 마디로 섬김이었고 사랑이었다.

 

  우리 사회에 스승의 자격을 갖춘 이들은 수없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제관계의 요체는 서로의 사랑과 존경이며 그 과정이 서로에게 다가감이다. 서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함께하는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다양하고 전문화되어 가는 사회에 살면서 이제는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사제관계가 절실히 요구된다. 전문성과 인격을 갖춘 분들에게 먼저 존경으로 손을 내밀고 스승으로 대하면 그 분들도 사랑으로 감싸 안고 돌보아 주시리라. 또한 우리 자신도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본이 되는 삶을 사는 스승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