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삶
하루의 삶
오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본다. 밋밋한 날이 있는가하면 의미 있는 일들이 겹치는 날도 있다. 오늘이 의미 있는 일들이 겹치는 날인가 보다. 그것도 기쁜 일들이 여럿 있었다. 20여 일 전에 한국사 능력시험을 신청해 놓았다. 오래 전 한 번 응시하여 떨어지고 몇 번 원서는 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험은 치지 못했었다. 최근에는 막내와 같이 서류를 냈는데 막내를 시험장에 데려다 주었더니 시간이 촉박하여 응시를 하지 못해서 이번에는 아예 같은 시험장으로 지원을 했다. 날마다 기본적인 일에 분주해 준비를 못하고 시험일을 맞았다.
여유를 가지고 출발하려 했는데 막내가 수험표를 출력하느라 늦어져 시험장에 도착하니 시간이 빠듯했다.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 자극삼아 시험을 보는 것이니 서둘 것은 없었다. 자격증이 급히 필요한 것이 아니니 이번에 서둘러 꼭 합격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시험 시작 전에도 책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 본다고 점수가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다. 80분의 시험은 시작되고 문제들은 알쏭달쏭하다. 깊이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답을 적는다. 고치고 싶은 것이 나오기도 하지만 수정테이프를 쓰기도 귀찮고 정확히 모르니 고쳐도 의미가 없다.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맞는 학생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하다. 슬렁슬렁 문제를 풀고 나니 40분이 남는다. 할 일은 없고 문제를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문제지에 표한 것을 답지에 바로 옮겼는가만 확인했다. 멍한 상태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려 퇴실을 했다. 다음 시험이 석 달 후에 있으니 이제 제대로 준비하여 도전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막내에게 잘 봤냐고 물었더니 철기시대까지는 공부해서 맞았다고 한다. 막내는 합격하면 좋겠지만 이번에 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유쾌한 기분으로 가족들의 물음에 가볍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유관기관의 정답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시험주관사는 아니지만 그 시험을 위해 강의하는 학원의 정답지다. 궁금하고 호기심이 일어 문제지에 표시한 내 답과 맞추어 보았다. 놀랍게도 예상 밖의 문제들이 맞아들고 있었다. 결과는 정확히 최고 등급 합격선이었다. 그냥 얼떨떨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내가 스스로를 아는데 이것은 아니었다. 합격을 목표로 응시한 것이 아니라 자극을 위함이었는데 실력 없이 합격을 한 셈이다. 버릇처럼 이런 결과를 주신 그분의 의도를 추측해 보았다. 우리의 역사에 더 이상 시간을 쓰지 말라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최소한 희미하게라도 우리의 역사가 들어올 때까지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 시험장을 나오던 때의 결심처럼 팔월 시험을 준비해서 흡족한 점수를 자신 있게 받고 싶다. 사람의 마음이 이상하다. 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오니 무척 기분이 좋다.
초여름의 긴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온 밤에 내가 속해 있는 단체의 카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새로 만들어진 방이 있었다. ‘작가와 작품만남’방이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휩쓸고 지나갔다. 교수님을 제외하면 극히 소수, 네 명의 이름이 그곳에 있었는데 내 이름도 그 안에 있었다. 그분들과 같은 공간에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며 고민이었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 자신이 탄탄한 기초가 있는가. 그만한 연륜이라도 있는가. 그 어느 질문에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인 듯해서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내가 그 사실에 대해 뭐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 하던 대로 하는 것이 내 대응책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조금 더 열심을 내서 진전을 이뤄보고 싶다. 기초를 더 단단히 다지고 여러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싶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며 활발히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자신에게 늘 물어가면서 스스로를 채찍질 하려한다.
밤이 깊어 아이들이 돌아왔다. 시대가 달라진 것인지 시간관념이 서로 다르다. 나는 열시가 넘으면 밤이 깊어 밖에 머무는 일을 자제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이들은 열한시가 넘어도 그렇지 않다. 늦은 밤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고 자는 시간도 고정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나를 주려고 샀다며 아이들이 티셔츠를 내 놓는다. 아내가 휴대전화로 보고 고른 모양이다.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이 고맙다. 이런 저런 날들에 여러 가지를 선물해 주어서 늘 쓰는 것 중에 아이들이 사준 것이 적지 않다.
긴 하루가 가고 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살았는데 몇 가지 기분 좋은 일들이 있어 더욱 즐겁다. 내 노력으로 이룬 것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쁘다. 하나님께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