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늦은 나들이
때 늦은 나들이
말로만 듣던 ‘진천 농다리’를 어린이날에 온 가족이 찾았다. 가족이 어디를 함께 가본 일이 너무 적었다는 생각이 들어 당분간(當分間)은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추억을 쌓고 사진도 찍자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내가 무심하기도 했지만 분주하기도 하고 자신들 일에 바빠서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가정이 밀려났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도 고등학교 이후에는 자기들 생활이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하기가 어려웠던 듯하다.
한 세월이 지나 이제 아이들이 훌쩍 커 버렸다. 두 아이가 직장을 가지고 있고 막내가 열심히 자신의 일을 찾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온 가족이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아내도 그렇지만 아이들이야말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주의 종이기도 하면서 가장이기도 한 내가 유능하면 그런대로 세상 속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을 텐데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성도들도 가족도 심지어 나 자신도 불만이었다. 나 스스로도 답답했다. 어쩌란 말인가. 잘 하지 못하겠고 잘 되지 않는 것을….
그래도 늘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힘이 나고 뭔가 될 것 같은데, 설교할 때는 힘이 있고 불가능한 게 없는데, 성경을 덮고 강단을 내려오면 어느 것도 되지 않고 가능한 것이 없어 보였다. 두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신학을 마친 지도 30여 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이제야 되돌아보며 그분의 뜻을 어렴풋이 느끼는 듯하다. 세상의 평가는 한 줄로 세우듯 단순하지만 그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부른 사람들마다 독특한 평가기준이 있으리라. 축구 선수들 중에도 공격수가 있고 수비수가 있고 골키퍼가 있어서 모두가 승리를 위해 뛰지만 하는 일이 다른 것과 같으리라. 내 독특한 몫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아내는 내 역할을 분명히 아는 것 같지 않다. 내게도 확신만 있을 뿐 확인이나 검증을 거친 바는 아니다. 누군들 흔들림이 없을까. 조금의 요동도 없이 한평생을 산다면 어떻게 그것이 사람의 삶일까. 흔들림이 예술이고 문학이고 인간 삶의 흥미 요소가 아닐까. 본능과 도덕, 충동과 의지 사이에서 갈등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밖에 어떤 류(類)가 있을까. 갈등을 겪으며 고민하고, 생각할 줄 알고 의지를 가지고 선택하는 것이 인간만이 갖는 특권이다.
무식하기도 하지, 농다리라고 해서 개천을 가로질러 돌 몇 개 놓인 다리 하나 덜렁 있는 줄 알았다. 얼마 전에 누군가 정자도 있고 둘레길도 있다고 했지만 규모가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다. 현장에 가서도 놓여 진 돌다리를 건너가는 이들과 건너오는 이들, 건너편에 쏟아져 내리는 인공폭포와 공사 중인 정자를 보면서도 그것이 전부려니 여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30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겠다 싶어 구두를 신고 돌다리를 건넜다. 건너고보니 초평저수지도 있고 그럴듯한 하늘다리, 호수와 농다리길을 따라 조성한 등산에 가까운 순환로가 있어서 전시관까지 들르면 족히 하루길이 될 것 같았다. 산책로를 걸으며 이제는 아내와 내가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우리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지런히 앞뒤를 오가며 사진을 찍고 쉴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내고 함께 즐길 놀이를 준비하고 진행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대하며 다시 올 수 없는 세월을 기묘하게 살아온 나 자신을 보았다. 내가 좋아 가는 길이면 나 혼자로 족한 것을, 가족들에게 너무 힘든 일들을 요구한 것만 같다. 세상사람 같지 않은 가치관(價値觀)을 가지고 확연히 다른 사고(思考)를 하면서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내 모습을 본다. 때로는 자신의 삶을 강하게 긍정하다가 한순간 열패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자랑스러워 하다가 숨고 싶어 하는 서로 다른 스스로의 두 모습을 본다. 현실과 무관하게 하늘까지 닿을 무수한 목표들을 꿈꾸며 미리 이룬 듯 즐거워하기도 했고 자신은 하지 못하면서도 혼신을 기울여 일생동안 남들이 이룬 일들을 쉽게 평가하고 비판하기도 했었다.
길지 않은 하루해에 모두가 할 일들이 있어 내일을 위해 아쉬움을 안고서 일찍 집으로 왔다. 어느 일에도 만족하기가 어렵다. ‘조금 더 노력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아이들에게 가정에 내 자신 하고 있는 일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밀린 숙제를 성의 없이 해치운 느낌이다. 제때 못한 숙제는 다시하기 어려운 법인데 그나마 늦게라도 했다는 것에 오늘의 나들이에 대해 내 자신 위안을 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