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마을

오후의 산책길에서

변두리1 2015. 3. 17. 21:25

오후의 산책길에서

 

  햇빛 좋은 오후에는 산책을 하는 것도 즐겁다. 포장된 둑길을 걷는 것보다 냇가를 따라 난 흙길을 밟으며 걷다보면 몸속으로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들어오는 듯하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새침하게 얼굴을 내미는 풀꽃들을 감상하려 바닥을 보며 걷는다. 나의 무지를 일깨워 주듯 바닥은 이름 모를 조그만 풀과 꽃들로 가득하다.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바라보면 신기할 뿐이다. 그 여린 줄기와 잎사귀로 어떻게 단단하고 두꺼운 땅을 뚫고 나왔을까. 저토록 찬란하고 섬세한 작은 꽃들을 피워내는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풀꽃들에 넋을 빼앗기다 옆을 보니 작고 까만 개미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개미가 진을 치면 비가 온다는데 봄 가뭄이 심하니 반가운 징조가 분명하다. 날씨가 따뜻하니 개미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그들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숱한 이야기들이 있으리라. 개미들을 보면 가는 허리가 떠오르고 이솝의 우화도 생각난다. 부지런함의 상징인 그들. 서로 어울려 집단을 이루며 사는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우라는 성경구절도 있다. 철저한 분업(分業)으로 협동(協同)하며 단체 생활을 하는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과 교훈을 준다.

  저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나. 힘을 합쳐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 저들의 수고를 격려할 무엇이라도 내게 있는가. 주머니를 샅샅이 뒤져 보아도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다. 저들은 희고 작은 무언가를 운반하고 있다. 저들의 새끼들일지도 모른다. 개미들도 티끌모아 태산이란 의미를 알까. 저들에게도 개인적인 사정이나 질병이 있어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개미들도 약자들을 돌보고 배려할 줄 알까.

  힘을 합쳐 무언가를 열심히 이루어내는 개미들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의 이름다운 전통이었던 두레가 떠오른다. 푸른 하늘 아래 논물 찰랑이는 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매기고 받는 소리 속에 시름을 덜고 흥을 돋우며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면 벼를 베는 등의 힘든 일들을 하며 서로가 우리이며 하나 됨을 확인하고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여겼다. 지금도 그러한 일들이 행해지려나. 혹시 흥()과 유대감(紐帶感)은 사라진 채 값싼 노동력이라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에 의해서 힘겨운 돈벌이로만 행해지지는 않으려나. 아니면 그 단계도 지나서 자부심도 새참도 없이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누군가 한 사람에 의해서 기계를 사용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일도 젊은이들이 없으니 노인들끼리 힘겹게 하고 계실 것만 같다.

  한자로 개미를 나타내는 글자가 의(). ()바르다”,“옳다는 뜻으로 도리나 관계에 연결 지어 사용한다. 그러한 글자에 벌레 충()을 부수로 해서 개미[]로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다. 개미가 관계 속에서는 옳고, 개별적으로는 도리에 바르다는 것이니,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본보기로 꽤 적합하다. 개미가 포함된 고사성어로는 개미구멍으로 둑이 무너진다.”는 제궤의혈(堤潰蟻穴)이 있다. 곧 큰일도 아주 작은 일에 의해서 잘못될 수 있으니 모든 일을 철저하게 하라는 경구다.

  개미와 헤어져 큰 길로 올라오니 노점과 이어지는 신호등 앞이다. 저 멀리 노란 옷을 입고 줄지어 가고 있는 유치원생들이 보인다. 앞뒤에서 선생님이 인솔을 해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재깔거리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마치 노란 병아리들 같기도 하고 줄지어 가는 모습이 조금 전 보고 온 개미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생기 넘치는 인생의 봄을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할 일을 다 하며 내게도 부지런히 살라고 말없이 본을 보인다. 제궤의혈(堤潰蟻穴)이요, 티끌모아 태산이니, 세심(細心)하고 철저하게 부지런히 살아가면 온 산하에 꽃들이 빼곡히 피어나듯 우리 주위에 좋은 일들이 가득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