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마을

푸른 하늘 따사로운 햇살

변두리1 2015. 1. 1. 12:35

푸른 하늘 따사로운 햇살

 

  정초 오전에 유리창으로 보는 하늘이 푸르다. 눈 씻고 보아야 겨우 구름을 찾을 수 있는 높고 푸른 하늘. 마음이 개운하고 가볍다. 오늘 같은 하늘은 눈을 즐겁게 하고 건강하게 해줄 것 같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더구나 마음에 드는 것을 본다는 것은 은총이다. 인류가 지상에 있어 온 후로 수없이 보았을 푸른 하늘. 그것은 우리에게 주는 대자연의 너무도 멋진 선물이다. 삶에 지친 이들의 우울함에 대한 가장 좋은 무상((無償 ㆍ無上)의 치료제다.

 

  이 땅에서는 가장 추운 정초(正初)를 살아도 지구별 맞은편은 무더운 여름일 것이고 고개 들어 하늘만 보아도 더없이 푸른 하늘이 있다. 문을 열고 나 서니 햇살이 제법 따사롭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햇살이 이 한겨울에도 우리에게 온기(溫氣)를 주고 있으니 불평을 할 이유가 없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나라 밖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은 없어도 우리의 기후조건이 얼마나 좋은가. 구태여 더 좋은 곳을 찾으면 없다 할 수 없지만 이만하면 넘치도록 복 받은 것 아닌가. 이 추위 속에서도 땅속에서는 내년을 준비하는 분주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적고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지 자연은 나름의 리듬을 가지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중이다. 겨울은 하얗게 천지를 덮어주는 순백의 눈이 있고 봄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쉼표 같은 휴식이 있음이 얼마나 좋은가. 약한 햇살이 있으니 여름을 그리워하고 상록수들 귀한 것을 알게 한다.

 

  동네 길을 걸으니 확실히 한겨울. 귀와 코끝을 지나는 바람이 매워서 버쩍 정신이 든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는데…, 내일 모레가 소한이니 왜 춥지 않으랴. 대한보다 춥다는 게 소한이다. 어릴 적 바람 불고 눈 오던 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방안 보다 오히려 따듯한 햇볕 잘 들던 밖에서 보던 처마 끝 고드름의 반짝거림과 햇살에 녹아내리던 진주 같던 물방울을 잊지 못한다. 돌아보면 낭만적일 수 있어도 얼마나 힘든 시절이었던가. 그때에 비하면 오늘의 삶을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 땅에 앞서 살다 간 분들이 안쓰럽다. 어느 한 시절 마음 놓고 끼니 걱정 없이 편히 살아 본적 있었을까. 어느 때든 상류 귀족들이야 배부르고 등 따듯이 살았겠지만 서민들이야 가난을 벗어난 때가 있기나 했을까. 이 나라에 자가용 넘치고 어딜 가나 고급 음식점 즐비하고 가게마다 좋은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일 줄을 이 땅에 앞서 살았던 그 누군들 예상했을까.

 

  거리에서 스쳐 지나는 이들의 옷차림들이 무겁고 표정들이 어둡다. 최근의 경제 형편과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경제도 주기가 있다고 하니 가을이나 겨울쯤을 지나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보고 싶다. 인류는 많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당시를 기준으로 위기라고 염려하는 것들을 발상의 전환으로 기회로 바꾸며 전진해 왔다. 인류의 역사에 중요했던 것이 에너지원이었는데 화목(火木)에서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化石燃料)로 다시 수력에너지를 거쳐 풍력 조력 태양에너지로 또 원자력과 핵에너지 등으로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발전해 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이런 나에게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이 되어서 크게 달라지거나 나아지는 것은 또 무엇인가. 긴장하고 위축될 때가 아니라 편안하고 자유로울 때 좀 더 창의성이 발휘되어 해결책도 더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실내의 기온이 훨씬 따뜻하다. 겨울을 예상하여 대비하고 난방과 단열에 주의를 기울인 결과다. 계절 중 겨울을 통과하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 암울한 위기도 대비하고 노력하면 넉넉히 넘어갈 수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기다려서 스키를 즐기고 해외여행을 하고 추억을 함께 만드니 생각을 바꾸면 삶의 위기도 즐길 수 있고 지나고 나면 돌아보고픈 추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위기를 넘기는 방식이 그 사람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화면을 또렷하게 보기 위해서 일부러 극장의 조명을 꺼 어둡게 하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악의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훈련을 하기도 한다. 한겨울 소한을 맞는 이 계절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시기가 아닐까.

  그래도 적잖이 위안이 되는 것은 한겨울에도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있고 오늘처럼 하늘 푸르고 햇살 따듯한 날들이 있어 긴장과 이완 번갈아 들고 고통과 즐거움 서로 상쇄(相殺)되면서 그 과정을 거치며 소한 대한 지나고 우수 경칩 다가와 대동강 물 풀리고 겨울잠 자던 개구리도 깨어 나 온 산하가 두런두런 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가 바뀌고 내 마음에는 벌써 성급한 봄이 저만치서 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고 종달새 지저귀는 따뜻한 봄은 항상 남쪽에서보다 우리의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 나는 한겨울에 따사로운 봄 햇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