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마지막 날에

변두리1 2015. 1. 1. 12:32

마지막 날에

 

  섣달 하고도 그믐날. 이 날이 가면 새해를 맞는다. 단거리나 장거리나 심지어 마라톤도 결승선은 온 힘을 다해 달려서 통과한다. 내일이면 새해 첫날. 출발은 천천히 해도 힘이 충만하다. 힘이 가득 모여 있는 구간이 이 지점이고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도 결승선과 출발선이다. 마지막은 항상 아쉬움이 남고 순위가 가려지고 상벌이 있을 것만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가 다른 노선을 도는 듯 느껴진다. 너는 너의 코스를 네 방향으로 네 속도대로 돌고, 나는 내 코스를 내 식대로 내 속도로 돈다. 자주 마주치고 앞서가고 뒤에 가도 비교하지도 않고 비교할 수도 없다. 자신이 자신을 평가할 뿐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다. 세월에 대해서도 단선형(單線形) 세계관이 있고 나선형(螺旋形) 세계관이 있다. 분명한 출발과 끝이 있고 되풀이 되지 않아 같은 과정을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것이 단선형이다. 이것은 과거는 과거일 뿐 다음의 경주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어 좋다. 나선형 세계관은 둥그렇게 돌면서 전진한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꼭 같지는 않지만 여러 번 기회가 주어져서 한번 잘못해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과거의 성과가 없어지지 않고 그 위에 현재를 이어간다. 어느 것이 더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한 가지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설명한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한 해의 목표를 열심히 세우고 살아 보았다. 연말이 되면 늘 민망했다. 목표와 성취의 차이가 너무 컸다. 자신의 능력을 파악 못하고 과도한 계획을 세운 탓이다. 그 여파로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았다. 연말이 되어도 후회할 것도 없고 인정할 만한 것도 없었다. 오래 전 군대(軍隊)에 있을 때 정월이 그렇게 피곤했다. 골똘히 원인을 알아보니 그때까지 정월은 늘 방학이어서 게으르게 쉬는 기간이었다. 내 몸의 리듬이 쉬는 것으로 맞추어져 있는데 일을 하니 힘들었던 것이다. 비슷한 리듬의 삶을 이제는 수십 년째 살고 있으니 스스로의 속도가 파악되는 것 같다. 이제는 한해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남의 삶을 겻눈질하지 않고 내 삶의 소박한 계획을 세워서 유월 말 쯤 중간점검도 하고 연말에 돌아보아 스스로에게 포상을 하면 더욱 즐거우리라. 한 가지 일을 하며 살아 온지도 서른 해가 되어가니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듯한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야속하다.

 

  새로운 한해에 어떤 일을 목표로 살아갈까. 내 본래의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니 예배와 말씀을 미리미리 잘 준비해야지. 건강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운동을 거르지 말아야 하며 오카리나도 열심히 배우고 학생이니 방송대 생활도 충실하게 해야겠다. 틈틈이 책들도 읽어야 하고 이런저런 모임에도 참여해야 하니 따져보면 꽤 바쁘다. 그래도 글을 멀리 할 수 없으니 부지런히 써서 내년에는 어떤 종류든 책을 한 권 냈으면 좋겠다.

  살펴보니 문제가 되는 것이 시간 관리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정한,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다. 연세 드셔서 심신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뵈면 나도 언제까지 건강을 허락받을지 알 수 없다. 세월을 허투루 살 수 없는 이유다. 어떻게 하면 별다른 오해 없이 내 시간을 최대로 확보할 수 있을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로 두세 시간씩 보내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다. 그래도 상대방의 면전에서 이제 그만 가라고 할 수는 없다. 평상시에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당신이 하는 일은 소중하고 자신은 그토록 의미가 없나 혹은 세상 모든 일을 당신 혼자 하려고 하느냐 하지는 않을지. 혹은 그렇게 바쁘면 함께하기 어렵다고 돌려놓는 것은 아닐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우선순위를 정하여 가급적 그대로 따라가며 살아야겠다.

 

  자신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예전 어르신들이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를 회상해보면 그분들에게서는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과 무게를 느꼈던 것 같은데 왜 내게는 그런 것이 없을까. 이제는 맑고 깨끗한 울림이 있는 한해 한해를 살아야 하는데 별반 자신이 없다. 그냥 악취나 풍기지 않는 삶이면 다행이겠다. 세월이 갈수록 삶의 무게감이 더해져 간다.

  새해의 달력을 보는 일은 늘 신선하다. 흰 눈 덮인 먼 길을 떠나는 듯한 설렘이 있다. 새해를 맞는 충만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일하고 쉬는 것을 확실히 하며 연말까지 가고 싶다.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아서 그 일에 전념하고 싶다. 남들과 조금도 비교하지 않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내 길을 가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격려하고 인정해 주어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한해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과녁을 향하는 화살처럼 힘차게 출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