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柔軟性)을 지키려
유연성(柔軟性)을 지키려
배움으로 향하는 길에는 항상 설렘이 있다. 이제는 유연성을 기르려 가 아니라 지키려 배움의 길에 나선다.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말[柔能制剛]이 있다. 모난 돌을 둥글게 만드는 것은 날카로운 정이 아니라 부드러운 물이다. 부드러움을 유연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연함은 살아있음의 상징이랄 수 있으니 물이 오가고 피가 흐를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반대로 굳음과 딱딱함은 죽음의 상징이다. 생명이 떠나면 신진대사가 멈추고 경직되어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된다.
자연계에서 어린 존재들은 유연해서 민첩함과 놀라운 적응력을 갖는다. 유연성은 움직일 수 있는 폭(幅)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크게 다치지 않고 다쳐도 회복이 빠르다.
신체적 유연성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고의 유연성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생각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함이다. 어떤 문제의 답을 한 가지만 알고 있는 이와 다섯 가지를 알고 있는 이는 대처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한 가지만 아는 이는 그것이 아니면 틀렸다고 생각하고 다섯 가지를 알고 있는 이는 상대의 의견이 그 안에 있으면 그런 방법도 가능하다고 인정해주고 그 외의 방법을 들으면 또 다른 해결책을 알게 된 것을 고마워하며, 그 길을 찾아낸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ㆍ격려해 줄 것이다.
견문이 좁아 자기의 의견만 옳다고 우기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편협한 고집쟁이라고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본인들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자신들은 원칙에 충실한데 타인들이 오히려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강경하다. 대화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경직된 사고는 무수한 시행착오나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고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이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각 분야에 축적된 정보의 양이 원체 많아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해 나아가야 한다.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속적인 배움이다. 우리의 부모시대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수명이 점점 짧아져 간다.
조금만 소홀히 하면 어느 순간에 자신이 평생을 지켜 왔던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고 혼자만 이방인처럼 소외될 수도 있다. 정보화의 흐름에 무신경하게 몇 년을 지내왔더니 어느 순간 주변의 동료들은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고 유에스비로 정보를 교환하며 문자와 밴드로 소통하고 있었다. 대화를 함께 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사회의 발전 속도를 무시하다가 자신만 뒤쳐진 꼴이 되었다.
얼마 전에 아는 분에게서 수중에 사는 어류 중에 상어만 부레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충격이었다. 부레가 없으면 바로 물속에 가라앉을 텐데 주생활 무대가 수중인 상어가 어떻게 살아갈까. 그분은 상어에게 부레가 없는 것이 상어를 바다의 강자로 만든 주요인이라고 알려주었다. 부레가 없어서 잠시라도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고 말아, 새끼 때부터 끊임없이 헤엄을 쳐서 거대한 몸집에도 유연하게 수영을 하고 많은 포획물들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재앙처럼 여겨지는데 그것이 최대의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장자(莊子)의 인간세(人間世)편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나온다. “쓸모없음의 쓸모”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나무가 지극히 쓸모가 없어서 아무에게도 벌목(伐木)당하지 않아 거목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도 잘하는 면이나 빼어난 미모가 있으면 일찍부터 인정을 받고 과도(過度)하게 불려 다녀 자신의 계획대로 살거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드러난 재능이 없어서 초반에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부단한 노력이다. 지속적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감(感)이 무뎌지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리적인 면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유연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퇴보하지 않으려고, 편협과 고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배움의 길에 머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