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사라여, 먼저 가구려(아브라함)
아내 사라여, 먼저 가구려(아브라함)
이렇게 홀연히 떠나는 당신 앞에 서니 함께 지나온 많은 세월을 돌아보게 되는 구려. 당신과 함께 한 수많은 나날들이 흘러간 한 순간의 꿈같구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까지 우리의 여정도 길었지만 겪었던 어려움들도 너무 많았소. 그 무수한 위기마다 당신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요.
돌아보니 내가 취했던 행동들이 초기에는 무력했고, 힘이 있었을 때는 무모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무정했구려. 모두 내 불찰이오. 때로는 신앙을 이유로 당신을 힘들게 했던 것도 있었구려. 용서하구려.
우리가 가나안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 기근 들어 이집트로 내려갔을 때 기억하오. 비슷한 경우가 한 번 더 있었는데 너무 겁이 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었지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탈이 안 났고, 화가 변하여 복이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너무 미안하오.
하갈과 이스마엘로 인한 일로도 당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이 많았구려.
조카 롯과 그 일행을 구하러 갔던 일 기억나지요. 그 때는 어찌 보면 무모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오. 또 우리에게 속한 모든 사내들이 할례를 받던 순간도 있었지요. 그 순간도 외부의 적들이 쳐들어 왔더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힘의 공백기였지요. 그런 경우에는 당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위기를 느꼈겠지만 나는 편안했었소. 적어도 그 사건들에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허락이 있었소. 그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야기를 했지만 믿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오. 하지만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소.
모리아의 한 산으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가면서 당신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었던 것을 두고두고 서운해 하던 당신을 잊을 수 없소. 그 일을 생각하면 내게 정이 떨어졌으리라 여겨지오. 당신에게 이삭이 어떤 아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 본적이 없소. 당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무정한 일이었지만 도리가 없었소. 많이 망설였다오. 그러나 당신과 상의하면 이삭을 데려가는 것이 불가능이라고 판단했소. 그렇게 됐다면 우리는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을 거요.
이삭에 대한 당신의 부탁은 최우선으로 실천할 거요. 당신의 청이 아니라도 이삭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려고 다짐하고 있어요.
평생 동안 당신의 도움을 한없이 받기만하고 내가 해준 것은 별반 없음을 발견했을 때, 미안하고 당황스러웠소.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은 당신이었소. 당신과 함께 즐거움과 고통을 나누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당신께는 고통의 세월이 훨씬 길었겠구려.
이삭이 태어나기 전의 긴 시간들을 어떻게 눈물 없이 돌아볼 수 있겠소. 당신의 그 수십 년 마음고생과 고통을 잊을 수가 없구려. 하갈과 이스마엘도 결국은 같은 맥락의 이야기지 않소. 당신이 아무리 강력히 권해도 하갈을 취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때는 내 생각이 어리석고 짧아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여겼소.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고통이었소. 열다섯 해 동안 하갈과 이스마엘을 볼 때마다 당신이 느꼈을 감정들을 헤아리지 못해 미안하오.
이삭의 돌잔치를 마치고 당신이 하갈 모녀를 내 보내자고 했을 때, 사실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웠었소. 어떻게 하든 결정을 미루고 시간을 끌려했는데 뜻밖에 그 분의 음성이 들려왔지. 그 일에 대해서 아내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었소. 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분과 당신의 의견이 일치하는 데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소. 주변의 많은 이들은 너무도 의아해 했을 거요. 한 가정에게 중요한 일을 며칠간의 말미도 없이 그토록 매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요. 난 지금까지도 그 일을 이해하지 못하오.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웬만하면 살아간다는 것이오. 그들도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으니 말이오.
롯과의 거주지 결정에서 내가 척박한 땅을 차지해도, 아비멜렉과 그 군사들에게 우리가 힘들여 팠던 샘들을 빼앗겨도, 아들,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려 질 뻔해도 당신은 아픈 마음을 안고 다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최선이 되었소.
아내 사라여, 이 땅의 일들은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가 있어 함께 하는 것 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을 것이오. 이삭에 대해서도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오. 다시 한 번 다짐하건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아내를 찾아주고 소홀함 없이 온 힘 다해 돌보아 주겠소.
편히 가서 편히 쉬시오. 얼마 기다리지 않으면 나도 곧 당신 있는 곳으로 갈 거요.
이 땅에서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당신의 남편 아브라함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