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문학관 탐방기
정지용 문학관 탐방기
서두른다고 했어도 마음만 급했지 도서관에 도착하니 아홉시가 조금 넘었다. 집결장소에는 벌써 참가자들이 많이 와 있다. 간단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듣고 버스에 오르니 그제야 날씨가 눈에 들어온다. 며칠 비가 오고 구름이 끼어 걱정했는데 햇볕이 났다.
약간은 들뜬 새털구름 같은 마음으로 차안에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아마도 함께 온 이들이 끼리끼리 앉아 일상사들을 나누고 있으리라. 대부분 낯선 이들인데도 왠지 친숙하게 느껴진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라서 그런가 보다. 우리를 맞이하는 정지용선생의 그림을 보니 옥천에 왔음을 실감한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정지용생가에 도착했다.
몇몇은 나지막이 어떤 이들은 높은 음으로 “향수”를 부른다. 우리에게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들려줄 현직교사요 시인이며 서예가인 김성장님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옥천과 정지용시인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 오늘 같은 안내와 설명을 수없이 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정지용이 나고 자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에서, 백여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우리가 그를 돌아보고 고향과 문학과 삶을 생각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지용은 열두 살 초등학생으로 동갑의 신부와 결혼을 한다. 열일곱 살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니 아마도 그 때까지는 고향집을 중심으로 옥천에서 생활을 했지 싶다. 그는 백여 년 전에 이 공간에 머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드러내놓고 알려주지 않는 조국의 현실과 시대의 진실을 서서히 깨우치며 괴로워하며 살았으리라. 가까이 건립되어 있는 정지용문학관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많은 작품과 유물들과 문학상 수상작들이 전시되어 있는 그의 공간에 시인이 밀랍으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이 시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평생에 추억거리가 되리라. 전시관 강당에서 김성장 시인의 강의가 있었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시인들과 문필가들이 한문 투의 글들을 쓰고 순 우리말은 토씨 정도였는데 정지용의 시에서는 오히려 한자 어휘를 찾기가 어려울 만큼 순 우리말로 아름다운 시들을 썼다고 한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임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시인은 대단한 애국자다.
정지용 시인이 다녔던 죽향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김성장 시인이 짓고 신영복체로 쓴 원형기념판이 있다. 어린 정지용이 운동장과 복도를 거닐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배워갔을 공간에 우리가 와 있지만 백여 년의 간격이 우리로 그를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그가 고향을 떠난 후 육 년여가 지나서 고향생각이 사무칠 때쯤 우리 모두의 시가 된 “향수”를 썼을 것이라 한다. 그의 시 향수 속에는 우리 모두의 고향이 있고 산업화 이전의 엄마 품 같은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마음에 새겨진 돌아가고픈 한 민족 마을 공동체의 원형이 있다.
정지용은 납북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분명하지 않아 1988년에야 해금되어 그의 시가 우리에게 돌아온다. 현재 한국시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 수에서 정지용은 압도적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정지용문학상은 올해로 26회에 이르며 수상자의 면면을 보아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임을 알 수 있고 매년 열리는 “정지용문학제”는 그의 영향력과 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생가 가까운 곳에서 취향을 따라 새싹비빔밥과 묵밥으로 점심을 먹고 예상하지 않았던 전근대 생활용품들을 둘러보았다. 식당이 옥천여중의 교무실 자리였고 식당주인의 선조가 원체 거부여서 조금씩 사 모은 것이 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할 수 있을 만큼 되고 진귀한 물건도 많다고 한다. 그는 또한 명망 있는 서예가라고도 했는데 시간이 넉넉지 못해 여유 있게 볼 수는 없었다. 육영수여사의 생가를 방문하자는 요청도 있었지만 계획대로 장계국민관광지인 조각시비공원을 둘러봤다.
그곳은 넓은 공간에 정지용문학상 수상작들을 자유롭게 배치 전시해 놓았는데 강사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문인들에게 세한도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던지 25회에 이르는 문학상수상작 중에도 두 작품이 있고 관계된 시만 모아도 시집을 한권 낼 정도이며 수필도 적지 않다. 시류를 넘어서는 사제의 정과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우리의 국보로 한겨울 눈 속에도 꺾이지 않는 선비의 지조를 보여주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청주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은 한층 익숙해져서 심리적으로 훨씬 가까웠다. 도착하여 해산을 할 때까지도 햇빛은 엷어지지 않았고 좋은 곳을 보고 좋은 추억을 쌓은 귀한 하루였음을 되 뇌이며 도서관은 항상 최선의 강좌만을 준비한다는 담당자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감사함으로 재확인하게 되었다.
2014 길 위의 인문학 강좌와 그 일환으로 행복한 문학읽기 정지용 문학관 탐방을 기획하고 세심하게 실행해준(그것도 무료로) 흥덕도서관과 모든 관계자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