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의연(毅然)히 죽어 땅에 묻히다

변두리1 2014. 9. 11. 09:32

의연(毅然)히 죽어 땅에 묻히다

 

  나는 사마귀다. 더러는 나를 버마재비 혹은 당랑(螳螂)이라고도 부른다. 내 짧지 않은 생애동안 숱한 죽음의 위기들을 넘어 왔는데 급기야 오늘에 이르러 내 삶을 마감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우주의 질서를 파수하는 무사로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기보다 의연히 죽기로 결심했다. 내 육신은 죽어서도 우주를 풍요롭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다. 이에 내 떳떳한 죽음의 기록을 남겨 우리 종족들의 자랑스러운 삶과 죽음이 많은 이들의 본보기가 되도록 하려 함이다. 내 이야기를 택함은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 동족의 보편적인 거룩한 종적(蹤迹)을 이 땅에 남기기 위함이다.

 

  우리 종족은 출생부터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 다른 족속들은 암수의 기분에 따른 교합으로 이 땅에 오지만 우리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의(義)의 용사를 보존하려는 사명의식으로 부모님들이 생명계승의식을 치른 후에는 후손만대(後孫萬代)를 위한 아버지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토대위에서 태어난다. 그렇기에 우리의 근육과 혈관 속에는 대의와 타인을 향한 살신성인의 정신이 종족적 유전자로 새겨져 흐르고 있다.

  우리의 외모도 많은 이들의 경외(敬畏)의 대상이다. 훤칠한 키와 탄탄한 몸매, 크고 억센 팔과 다리, 위엄에 찬 두상(頭相)과 눈은 헌걸찬 무사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누구나 어디서든 우리를 보면 경외의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배우지 못한 이들이나 아이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면 두려워하면서도 징그럽다고 말한다. 그럴 때면 경외 혹은 존경스럽다고 하는 것이라고 고쳐주고 싶지만 얼마안가 깨닫게 되리라고 믿고 지나치곤 한다. 우리에 관해 가장 잘 알려진 일화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다. 원체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얘기라 되풀이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무인으로서의 강한 자부심과 당당함에 제(齊)나라의 군주(君主) 장공(莊公)조차도 예를 표하고 우회(迂廻)해서 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도 지식이 얕고 생각이 천박한데다 시기심까지 그득한 이들은 “제 분수를 모르고 상대할 수 없는 강적에게 대드는 것” 이라고 그들 수준에서 오해를 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 별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집의 작은 화단을 방문했다. 그들로서는 우리 같은 무사가 방문했다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곳에 작고 엉성하지만 소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내가 그 중의 한 나무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오십이 될까 말까 해 보이는 안주인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짐작으로는 귀한 무사가 오셨으니 나와 보라는 것이었으리라.

  많은 이들이 우리 족속이 귀하다는 것을 알기에 딱 어울리는 이름을 우리에게 지어 주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 승상과 버금가는 무인의 가문이 사마(司馬)씨 임을 천하가 다 안다. 아마 공명을 이긴 유일한 인물이 사마 중달(司馬 仲達)일 것이다. 사마 사, 사마 소, 사마 염 등 대단한 이들이 즐비하고 후에 진(晉)나라를 세우는데 그들의 성(姓)에 귀(貴)자를 덧붙여 학식 있는 이들은 우리를 사마 귀(司馬 貴)라고 부른다. 무식한 이들은 그것도 알지 못해 아무렇게나 “사마귀” 혹은 사ㆍ마귀(邪ㆍ魔鬼)인 것처럼 알아서 우리를 사악한 마귀 취급을 한다.

 

  잠시 후에 역시 오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 이가 나오더니 꽃삽을 찾아 들고서 내게로 왔다. 꽃 한포기를 심거나 캐려고 꽃밭으로 오는 줄 알았다. 그는 내 앞에 오더니 “가, 죽기 싫으면 다른 데로 가” 라고 소리를 질렀다. 무식하면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제나라 장공 앞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고 당당히 버텨서 돌아가게 만들었던 족속의 후손이 보잘 것 없는 범인의 한 마디에 천한 것이나 패잔병처럼 후다닥 도망을 가야하는 가로 잠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조상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숨도 한번 길게 쉴 사이 없이 곧바로 가는 소나무 둥치를 꽃삽으로 쳤다. 나를 치지 않은 것은 겁을 주려는 의도 같았다. 갑자기 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오기(傲氣)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당신의 알량한 협박에 굴할 내가 아니라는 결연한 의지(意志)로 소나무 둥치를 손과 발로 강하게 움켜쥐고 버텼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내 허리에 둔탁한 통증과 함께 대낮에 하늘에 별이 보이고 손과 발에서 힘이 빠져 나가며 의식이 흐려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학식과 양식이 있는 이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품격과 행동을 불학무식한 이에게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선조들의 기상과 패기에 누(累)를 끼치지 않고 깨끗하게 이 땅을 떠나는 것도 무사다운 행동일 것이다. 내 후세를 위하여 거룩한 생명계승의식을 행하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내 몸을 살신성인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사내는 그래도 나를 당랑(堂郞)으로 아는지 땅을 파고 내 육신을 묻어주어 큰 수치는 면케 해 주었다.

  하급 무인들이 하듯이 후손들에게 내 복수를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 무식한 이들을 불쌍하게 여겨 내 한 몸 사라지는 것으로 족할 뿐 원한을 남기진 않는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혼신의 힘을 모아 이 글을 기록하니, 후손들은 무식한 이들을 조심하며 세상은 사마 귀(司馬 貴) 족속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