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내 아들 이삭(아브라함)
진정한 내 아들 이삭(아브라함)
아내의 출산이 코앞이다. 원체 노산(老産)인데다 초산(初産)이니 걱정이 한둘이 아니지만 우리가문의 더없는 경사(慶事)라 기쁜 마음이 걱정을 덮고도 남는다. 아내와의 결혼생활 수십 년에 내 나이 백 세, 아내 나이 구십에 첫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적인 것인지 남들은 모르리라. 지난밤에도 아내의 배를 쓸어보았다. 작은 심장박동이 내 손으로 느껴져 오며 때로는 울룩불룩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간혹 발길질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내의 표정에서도 힘들고 염려스럽다기보다는 평생의 멍에 하나를 벗는다는 홀가분함을 읽을 수 있다. 남들은 아이를 가지면 아들, 딸이 궁금하다지만 하나님이 아들이라 하셨으니 믿고 감사할 뿐이다.
아들이 없어서 그동안 겪었던 서운함과 허전함 그리고 피해의식과 압박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은 것은 아내였다. 어느 자리에 가나 으레 받았던 질문 “자녀가 몇이나 되세요?” 우리의 어색한 대답 “아직 없어요.” 질문했던 이들이 오히려 당황해 하고 이어지는 불편한 순간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이제는 며칠만 지나면 우리와는 관계없는 모습들이 되리라.
우르에서 출발할 때도 하란에서 떠나올 때도 모두가 아들 없음을 걱정해 주었다. 가나안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도 상속자 부재를 아쉬워했다. 하나님은 이십오 년여 전부터 아들을 약속했지만 현실화되기까지는 너무도 긴 세월이 필요했고 그 세월을 견디지 못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었지만 그로인한 갈등과 가정불화가 적지 않았다. 아내 사라에게는 아들약속이 하나님을 믿는 일에 걸림돌이기도 했고 열등감을 주었고 번민하게도 했고 최근에는 확신의 통로도 되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낀 요소도 아들문제였다. 비록 서자(庶子)였지만 이스마엘을 보는 것은 즐거웠고 든든했다. 내 나이 많아지고 아들은 없어서 다마스커스 출신의 엘리에셀을 상속인으로 삼으려 했다가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는 온 세상이 내 것 같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숱한 축하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했고 아내 사라에게도 미안한 것이 있었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서 아내의 고민이 깊어지고 가정의 평화가 위협받았으며 하나님과의 은혜로운 관계가 한동안 끊어지기도 한 것으로 보아 하갈을 통한 이스마엘 출생은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방법이 아니었다고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나로 충분히 깨닫게 하시고 마침내 그 분의 때가 찼을 때 우리에게 오셔서 오래 전 약속을 되풀이 하시며 아들을 주겠다고 선언하셨다. 우리는 긴 세월 바라던 바였지만 믿을 수 없었다. 온전히 그 분의 일방적 은혜였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처럼 아이를 갖는 것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전적으로 그 분의 능력이요 의지였다.
아내 사라의 배가 불러왔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고 조금 지나서는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세월이 지나 분명해져서 하나님 말씀의 확실성을 믿고 무한(無限) 감사했다. 이제는 나에게 아들이 태어나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 초반에는 누구도 진심으로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다들 안타깝고 민망히 여기는 것 같았다. “얼마나 아들이 갖고 싶었으면….” ‘젊어서도 생기지 않은 아이를 부부 나이 백 살과 구십 살에 가졌다고 하는가. 혹시나 상상임신을 했거나 날짜를 맞추어 타지에서 아이를 데려 오려나보다’ 라고 생각들을 하는 듯했다. 아내는 주변 아낙들에게 지난 몇 달 동안 배를 많이 열어 보여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내의 배를 만져보고 태동(胎動)을 확인하곤 했다. 얼마가지 않아 소문은 모든 곳에 퍼졌고 한동안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아내에게 와서 배를 쓸어보고 뱃속에서 아기가 노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이 지역 여인들의 일이었다. 아내도 싫지 않은 표정으로 “오늘 벌써 스무 번도 더 열어 보네. 뱃속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애가 사회성 하나는 확실하겠네.” 하고 즐거워했다. 간혹 아낙들이 아들일까, 딸일까를 궁금해 하면 아내는 말할 것도 없이 아들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했으니 보나마나 아들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것에 대해서는 손톱만큼의 의심도 없다.
요즘은 우리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아들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갓난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많이 선물로 받기도 하고 여인들이 분담을 해서 준비하기도 한다. 몇몇 나이든 노파(老婆)들은 해산준비를 하고 젊은 여인들은 순번을 정해 아내의 상태를 수시로 살핀다. 가문이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친다. 나는 왠지 계속해서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고 전보다 더 많이 일해도 피곤하지 않다. 다만 이스마엘과 그 어미 하갈이 마음에 걸린다. 그들은 부쩍 나와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고 다른 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진정한 내 아들 이삭이 이름처럼 모두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귀한 존재, 그가 있는 곳에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