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끄러운 존재들(소돔인)
껄끄러운 존재들(소돔인)
십 수 년 전에 못 보던 이들이 우리가 사는 가나안 땅에 흘러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가 무관심한 동안에 목축도 하고 이집트에도 갔다 오고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우리와는 다른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 성대한 제사를 드리면서 그것이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거라고 했다. 그들의 재산과 인원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곳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가볍게 볼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그들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한 번씩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촌과 조카사이라고 하는데 자기들끼리 살 곳을 나눠서 조카인 롯과 그 일행들이 소돔에서 살기로 했다고 한다. 거주지선택의 우선권은 누가 보아도 삼촌인 아브라함에게 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조카에게 양보하여 조카가 소돔 땅을 골랐다고 한다. 누가 선택을 해도 삼척동자라 해도 소돔을 택할 것이다.
그들 중 누가 어디를 택하는 가는 우리의 관심 밖이다. 누구든 우리와 어울려 살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롯과 그 일행은 이 땅에 살지만 우리와 어울리려 하지 않고 우리의 공동의 관심사나 큰일에도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 한동안 말없이 보고만 있다가 한두 번 이야기를 해 봤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가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우리를 가르치려 할 때가 있다. 평소 호의적이 아니어서 호된 반격을 받아도 유사한 상황에서는 똑 같은 반응을 보인다. 우리들끼리는 그들을 사회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짓고 우리에의 협조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삼촌 아브라함이 그들 뒤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바가 있는데 북방 연합군에게 져서 사람들과 재산을 빼앗겼을 때 아브라함과 그 일행이 그들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사람들과 재산을 다 돌려준 것이다. 한두 다리 건너면 소돔 사람치고 그 일로 도움을 받지 않은 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을 치켜세우고 대단하다고 했더니 그들은 하나님이 했다고 했다. 그들의 신에 대한 인사치레려니 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말을 하면 대답이 똑 같다. 그것은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알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롯이 그나마 이 땅 소돔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그의 삼촌 아브라함 덕이다. 그 분이 롯과 그 일행의 뒤에 있으니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거다. 더하여 지난밤의 일은 짜증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다. 우리는 이번에는 롯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작심하고 소돔 땅의 거반 모든 남자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갔다. 롯도 크게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리는 롯이 당연히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서 손님들을 내어 놓으라고 협박을 했다. 그가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을 주겠으니 손님에게는 시비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한 번 더 롯에게 겁을 주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처지에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넌 꺼져라.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온 이들을 좀 다루어야 하겠다. 우리는 버티고 있는 롯을 밀어제치고 외지인이 있는 곳의 문을 부수려 했다. 우리는 훨씬 수가 많고 그들은 소수니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일을 통해 우리의 즐거움을 맛보고 롯에게 현실을 가르쳐주고 콧대도 꺾어 놓으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그 외지인들이 눈 깜짝할 순간에 놀라운 솜씨로 롯을 집안으로 들이고는 손 한번 까닥하지 않았는데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눈이 이상해져서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도 우리가 갈 곳도 분별할 수 없었다. 누가 길을 이끈 것도 아닌데 우리 모두는 다시 소돔성내로 향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을 해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얼마 후에 우리는 다시 밝은 눈이 되었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내도 그 때까지 잠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게 갔던 일은 잘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뭐라 답할 수 없었다. 이상하다. 뭔가 설명할 수 없지만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롯과 그 일행은 껄끄럽고 기분 나쁜 존재들이다. 날이 밝으면 유력자들이 다시 모여서 이곳에서 그들을 추방하는 것을 상의해 보아야겠다. 그들은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공동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점점 커가고 있다. 개들도 컹컹 짖어 대고 닭들도 울어댄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일에 롯과 그 외지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는 듯하다. 전에 없이 모든 가축과 짐승들이 소동을 피우고 있다. 사람들도 불안한지 여기저기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기도 새벽답지 않게 텁텁하고 유황냄새 비슷한 어떤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반백년이 되도록 살았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롯과 그 일행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날이 속히 밝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