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영의정(領議政)

변두리1 2014. 7. 21. 15:49

영의정(領議政)

 

  조선시대에 왕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지위가 영의정이다. 그래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불렀다. 오늘날로 생각하면 국무총리인 셈인데 역할과 중압감은 훨씬 더 컸음직하다. 어린 나이에 등극한 왕들도 있고 더러 유약한 왕들은 신하들에게 휘둘렸을 법도 한데 그런 때 일수록 영의정의 처신은 더욱 어렵고 백성들의 기대치는 더 높아졌으리라. 왕이야 어차피 세습하는 것이니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마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을 꿈꿀 수 없다면 백성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영의정이다. 어떤 지위건 원하는 이들이 많으면 시샘도 많고 문제도 생기게 마련이다. 주인은 바뀌어도 그 자리는 여전히 뭇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내가 영의정에 관심이 있는 것은 어떤 작은 벼슬에라도 관심이 있거나 높은 사람을 개인적으로 사귀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각지 않게 영의정으로 가게 이름을 하나 지었기 때문이다. 처남이 누이와 함께 음식점을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 독립을 하게 되어 건물도 얻고 설비도 하고 웬만한 것은 다 되었지만 가게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본인도 생각해 둔 게 있을 것이고 주위에서도 이런저런 이름들을 추천했을 것인데 딱히 “이것이다”하고 무릎을 칠만한 것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가운데 누이에게 전화하면서 의견을 구한 것인데 그것을 듣고 내가 망설임 없이 영의정을 추천해 주었고 듣는 이들도 대찬성이어서 음식점 이름을 “영의정”으로 짓게 되었다.

  그 이름을 생각하고 천거(薦擧)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처남의 이름을 거꾸로 뒤집으면 영의정이 된다. 그러니 친지들이나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가게 이름이 되는 셈이고 본인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셈이니 책임감도 따르고 신도 날 일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높은 지위이니 품위도 느낄 수 있을 것 아닌가. 또한 직종의 특성상 전화를 주고받을 일이 많은데 전하고 들을 때 혼돈될 염려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품위 있고 분명하며 기억하기 쉬우니 부르는 이도 부담이 없고 듣는 이도 좋으리라.

 

  충분한 수련의 기간을 거쳐 맛도 있고 나서부터 수십 년을 그곳에서 살면서 영업을 하니 인맥도 두터운데다 힘 모아 열심히 일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잡고 거뜬히 기반을 닦아 일어서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사업 잘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만 본인들은 생각한 바가 있어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해서 세월과 함께 신앙이 자라고 건실하게 살아간다. 자신들은 어려움을 겪지만 자녀들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살도록 온 힘을 다해 자녀들을 교육하는 모습도 무척 좋아 보인다.

 

  청년기부터는 누이에게서 사업 수업을 받았지만 이전에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방황도 적잖이 했을 것이다. 때로는 엉뚱한 분야에서 보람도 성과도 없는 일에 좋지 않은 소리와 눈총도 더러 받아 보았으리라. 무엇이 자기의 일인지를 찾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을 우연한 기회에 찾아서 자신의 평생의 직업으로 삼기도 한다. 가족 중 누가 예상이나 했는가. 평생을 음식업을 하며 살아가리라고. 그래도 지금은 주변에서 가장 선두주자로 달려가고 친인척들을 돌보며 살고 있다. 누구도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섰는가하면 넘어지고 이제는 길이 없다 생각할 때 길이 보인다. 그것이 삶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수학처럼 답이 뻔한 것도,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 미로 찾기 같고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 같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인생에서는 완벽한 성공자도 없고 완벽한 실패자도 없다. 성공과 실패 자체가 너무도 주관적이어서 다른 이가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본인이 정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 한 가지 혹은 두 가지를 괜찮게 했으면 성공한 삶이라고. 누구나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너무 높은 기준 때문에 실패했다고 단정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삶이 막을 내리고 나면 이 땅의 기준이 유효하기나 한 것일까. 한바탕 꿈처럼, 아이들이 낮 동안에 한 땅따먹기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가치체계 자체가 완전히 달라서 세상의 평가와 정반대가 될지도 알 수 없다. 현재 잘 나간다고 어깨에 힘주고 고개 뻣뻣이 세울 일도 아니고 ·한순간 내리막길을 가고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해서 어깨 축 늘이고 땅만 보고 살아갈 일이 아니다. 태풍은 오래 가지 않고 먹구름은 얼마 안가 갤 것이고, 비오는 날보다 햇볕 나는 날이 더 많은 것이 자연의 이치요 법칙이다.

 

  자신의 일을 오랫동안 한눈팔지 않고 하다보면 눈감고도 잘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그때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고 존경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리 잡아 자신이 그 분야에서 영의정이 되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