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정유정의 『칠 년의 밤』을 읽고

변두리1 2014. 6. 14. 19:38

정유정의 『칠 년의 밤』을 읽고

 

  정유정은 48세의 간호사출신 작가다. 그녀는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지만 어머니의 만류로 간호학을 택하여 대학을 마치고 14년을 간호사로 일했다. 41세 되던 2007년에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2009년에 〈내 심장을 쏴라 〉로 두 개의 문학상과 1억 5천만 원의 고료를 받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소설가로 등장해 2011년 〈7년의 밤〉과 2013년 〈28〉을 발표했다. 세심한 사전조사와 탄탄한 구성 그리고 실사(實寫)적 문장과 광활(廣闊)한 스케일로 단기간에 이 시대의 주목받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7년의 밤〉은 작가의 특성들을 잘 보여주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세령 호수가 있는 세령 마을에서 벌어진 마을의 실제적 지배자 치과의사 오영제의 외동딸인 초등학교 5학년생 세령의 죽음과 그 사건을 오영제 자신이 서포터스라 불리는 사적(私的)인 사건해결사들을 고용하여 해결해 가면서 전개해 나간다.

  이야기의 주인공격인 서원의 아버지 최현수가 면허정지인 상태에서 음주운전으로 세령을 친 후 자신을 아는 이도, 본 사람도 없다는 것과 자신 내부의 악한 유혹에 끌려 아이를 목 졸라 호수에 시신을 유기(遺棄)한다. 사건 해결을 위한 경찰과 오영제의 노력에 현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좁혀오는 압박에 위기를 느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정신분열적인 모습을 보이며 서서히 망가져 간다. 그 과정에서 사이코패스 같은 오영제의 전 방위적인 접근과 서원만은 끝까지 지키려하는 최현수의 사투가 숨 막히게 이어지지만 승부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과 같다. 우월한 위치에서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영제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범죄자 현수는 너무도 일방적이다. 9월 27일부터 10월 12일 새벽까지 벌어진 승부에서 현수는 살인ㆍ사체유기ㆍ고의에 의한 다수자 치사 등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거쳐 사형선고를 받고 7년여 세월이 흐른 후 사형이 집행된다.

 

  소설속의 모든 사건의 핵심에는 오영제가 있고 그로인해 주변의 많은 이들이 불행해진다. 그의 아내 하영은 견디다 못해 이혼을 청구하고 프랑스로 도피해 있고 딸 세령은 영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치다가 사고를 당해 죽으며 현수도 더 철저히 망가져 가고 현수의 아내 은주역시 사망하고 마을 주민들과 형사들도 희생되고 결국은 사설사건해결사들인 서포터스들까지 범죄자가 된다. 작가도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이 있는 오영제와 같은 악마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공적인 행정과 사법체제를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하며 관련된 모두를 치밀하고 끔찍하게 파멸시키려 한다. 두려운 것은 그가 살인미수ㆍ폭행ㆍ납치감금ㆍ의료법위반혐의로 체포되었어도 재판과정을 거쳐 딸의 죽음과 초범임이 감안되어 7-8 년의 징역을 선고받아도 4, 5 년이 지나면 감형을 거쳐 모범수란 이름으로 석방되어 사회에서 그러한 방식의 삶을 계속해서 살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이 땅에 오영제가 실재하지는 않지만 그런 유형의 인간들이 존재할 가능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이기성과 자본주의적인 힘 그리고 인성교육의 부재가 함께 만들어 낸 유능한 괴물인 셈이다. 이런 괴물의 출현을 막기는 쉽지 않지만 사회가 세심하게 예방을 하고 안 되면 격리라도 시켜야 한다. 이들은 태어나는 것 보다 오히려 병든 사회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극심한 경쟁의식, 자아중심적인 성장과정과 좌절경험의 부족이 저들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고 도덕성이 결여된 지식과 물질적 부의 추구가 인간성이 결여된 짐승들의 출현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무인 기계로 대부분의 것들을 해결하고 대인관계보다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많은 것을 진행하는 외톨이가 되도록 조장하는 문화, 너무도 자극적인 게임들과 매스컴의 영향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을 멀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멀어진 대가를 우리가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일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모든 면에서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선함이 회복되고 편법은 반드시 그 만큼 손실이 따른다는 자각이 경험을 통하여 길러져야 한다. 또한 사법적인 정의가 실현되고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형량의 조정도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범죄에 비해 형량이 낮다고 느낀다.

 

〈7년의 밤〉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흥미와 연민 그리고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500여 쪽이 넘는 분량임에도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흡인력이 대단하다는 증거다. 소설가라는 이들은 축복과 형벌을 함께 받은 이들이다. 그 많은 분량을 창작해 낸다는 것은 고통이고 형벌이지만 그 글을 통해서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고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게 하는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다. 고맙다 작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