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아브라함

믿지 못한 진실(롯의 둘째 사위?)

변두리1 2014. 7. 15. 23:23

믿지 못한 진실(롯의 둘째 사위?)

 

  나는 롯 가문의 둘째딸을 사랑한다. 언니보다 더 예쁘고 당연히 더 어리다. 미래의 내 아내를 무척 좋아하지만 장인어른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 사이에 도는 이야기로는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사회성이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소돔 사람들과는 물 위의 기름처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나도 어쩌다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곤 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초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에 비해 미래의 내 장모님은 훨씬 현실적이다. “그런 현실을 모르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세요.” 유(類)의 핀잔을 하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었다.

 

  소돔성에 살지만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이들과는 약간 다르다. 내 친구들은 술과 싸움과 동성애에 빠져 살지만 나는 약해서 싸움을 잘 하지 않고 동성애는 그냥 싫다. 하지만 술은 남들만큼 하는 편이다. 친한 이들과 함께 어울려 선술집에서 한 잔하다 보면 성안의 웬만한 흐름과 정보는 다 알 수가 있다. 일부러 들으려 의식하지 않아도 취기 오른 이들의 높은 목소리의 얘기는 듣지 않을 수 없다. 어제 저녁에도 들으려 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없이 장인어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인어른이 외지인 둘을 해질녘에 손님으로 맞아들였는데 한 밤 중에 함께 몰려가서 혼자만 잘난 척하고 어울리지 않고 살면 어떻게 되는지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콧대를 좀 낮춰주자고 했다. 나는 몰래 나와서 내 약혼자인 둘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아서 별 소용이 없겠지만 전해 주기는 하겠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이 싸움과 구경을 원체 좋아하니 모르긴 해도 노소 구분 없이 거의 모든 남자들이 모여들어 일을 낼 것만 같았다. 물론 내가 그곳에 갈 수는 없지만 우리 집이 멀지 않아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원하기만 하면 다 확인할 수 있다.

 

  저녁 내내 내 신경은 그곳에 가 있었다. 처가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양을 잡고 무교병을 굽는 듯했다. 소돔의 사람들은 어둠이 덮히고 별들이 하나 둘 솟아오르자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단한 이들이 이른 잠자리에 들 때쯤에 의도된 시비가 붙기 시작했다. 술이 취한 젊은이 하나가 장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저녁에 온 두 손님들을 끌어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것을 신호로 일제히 모여든 사람들이 “손님을 끌어내라”고 외쳐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 롯이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는 무어라 열심히 설명을 하고 간곡하게 사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물러날 이들이 아니었다. 애초에 결심하고 시작한 일이어서 분위기는 오히려 더욱 험악해 보였다.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어디서 굴러 들어와서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네가 판사냐. 그래, 너부터 손을 봐주지.” 장인어른의 저항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손님들이 있는 곳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다음의 진행사항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빤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의 진행과 전혀 달랐다. 소리만 들어도 상황을 알 수 있는데 예상과 맞지 않았다. “어디가 문이야” “어두워 분간이 안 돼” “그냥 가자고” 같은 몇 마디 말들이 수런수런 들리더니 저벅저벅 멀어지는 발 소리들이 들리고 잠잠해졌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상황은 끝이 나고 잠은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깊어진 새벽에야 잠이 든 것 같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내 이름을 부르는 듯도 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으니 분명히 내 이름과 문 두드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일어나 등불을 켜고 문을 여니 장인어른이 밖에서 계셨다. 뭐가 뭔지 통 모르겠다. 일단 들어오시라고 하려했더니 장인어른이 먼저 “들어가 얘기하지” 하고는 방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잠 못 들다가 이제 막 든 잠에서 깨어나 어안이 벙벙한데, “잘 듣게 사위, 이 세상은 이제 곧 망하게 돼. 서둘러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가세.”라고 말하고는 나를 재촉했다. 나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정신을 차린단 말인가. 초기에 잘못 대응했다가는 두고두고 어려움을 겪을 듯도 했다. 나는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장인어른, 지금이 몇 시인지 아세요. 겨우 그 말씀하시려고 이 시간에 오셨어요. 소돔 사람들이 장인어른에 대해 뭐라고 얘기들을 하는지 아세요? 그 얘기는 벌써 여러 번 하셨잖아요.”

 

  내 말에도 장인어른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심각하고 진지하게 얘기했다. “정말이야, 빨리 같이 가세.” 난 이성을 잃었다. “돌아가세요, 진짜로 세상이 망해도 난 안가요.” 장인어른은 한동안 슬픈 표정을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돌아갔다. 화가 났다. 정말로 화가 났다. 뭐 저런 예의도 상식도 없는 정신 나간 장인이 있나. 다시 자리에 누워도 멀리 달아난 잠은 쉽사리 다시 내게로 오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일어날 때에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주변이 소란하다.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비처럼 쏟아지고 집들과 들판과 풀과 나무와 가축과 사람들이 불에 타며 비명을 지른다. 내 몸도 타는 듯 뜨겁다. 장인어른에게 들었던 얘기가 잠재의식에 남아 꿈에서도 나타나는가 보다. 나는 꿈속인양 불에 타 소돔이 멸망할 때 함께 죽고 말았다. 장인어른이 전해준 참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소돔과 함께 정말로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