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사람들

이제 쉬소서(이모님을 보내며)

변두리1 2014. 7. 15. 08:25

이제 쉬소서(이모님을 보내며)

 

  지난 토요일에 원주 사는 이모의 팔순잔치가 있었다. 원래 생일은 다음날인데 주일(일요일)이라 교회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하루 당겨서 감사와 기념모임을 하신 모양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곧 주일날에는 그 이모의 언니 되는 이모가 하늘로 가셨다. 하나님께 가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날을 잡을 수 없다. 주일날 또 동생의 여든 번째 생일날 부름을 받으셨다. 큰 이모는 여든여섯 이셨다. 이 땅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사신 여인이요 그리스도인인 셈이다. 한 평생에 혹심한 일제의 탄압기와 좌우의 혼란기, 한국동란과 처절한 가난과 그의 극복의 시기를 온몸으로 관통하신 셈이다.

 

  그 혼돈의 시기는 ‘모난 돌이 정 맞는’ 때였다. 무엇이든지 잘하는 이들은 편할 수 없는 시절이어서 이모도 제 고장에 살지 못하고 홀로 낯선 땅으로 가야만 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서 그것이 친일이었는지 좌ㆍ우익의 문제였는지 단순히 특정인에 의한 시기나 질투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 이유였는지 알 수 없고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도 않으니 일일이 캐고 따질 일도 아니다. 어찌됐든 이십대가 되기도 전에 고향을 떠나 안부를 몰랐다가 오십대에야 다시 친인척들과 만나서 청주에서 삼십여 년을 사시다가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시고 이 땅의 마지막 며칠을 아들집에서 머무시다 하늘로 가셨다. 이 땅에 살았던 그 어떤 이들보다 힘들고 험악한 인생을 사신 것이다.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교회생활을 하신듯하다. 연세가 드시고도 기억력이 좋아서 서신서 같은 성경의 부분들은 완벽하게 암송을 하시곤 했다. 목소리도 크고 적극적이어서 전도사로서 하나님을 섬기기도 하셨는데 지금도 평소의 쨍쨍하시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모는 자손이 많았다. 신앙을 그야말로 생활로 살아내신 것에 비하여 자녀들 중 목회자가 적은 것은 서운한 일이셨을 것이다. 딸 하나와 친손녀와 외손녀 둘이 목회자의 사모가 되었고 조카 둘이 목회를 하고 있다. 이모의 가족은 교회를 선택할 때 이왕이면 번듯한 교회, 가장 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이름 있는 교회에서 인정받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어느 가정이나 그렇듯 늘 좋은 일만 계속되지는 않았다. 때로 어려움도 있었고 고통도 있었다. 세월도 여름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단조로운가. 그 시기를 거치며 모두가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 졌으리라.

 

  이모는 이 땅에서의 이별과 하늘로 가는 예식을 통하여 친인척을 다시 한 번 하나로 묶어 주었다. 인간관계가 언제나 봄날일 수만은 없다. 때로는 친인척 사이에도 온 천하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처럼 될 수도 있는데 그때에도 서로 만나면 웬만한 일은 봄 햇살에 눈이 녹듯 스르르 풀릴 수 있다. 혈연으로 묶여진 이들은 인위적으로 끊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맺어준 사람들이다. 어떤 일로 인해서 평생을 안보고 살 이들이 아니라 멀어지기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면서 또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평생을 가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들이다.

  옆에서 과정을 지켜보니 친인척들이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래도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아프게 배웅해 드린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확인하는 길이다.

 

  잠간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서운해 하며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살 것을 기약하며, 삶과 죽음을 돌아보고 각자의 남은 삶을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장례예식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임을 모든 이들이 다 안다. 그러면서도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살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삶의 끝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맞이하는 모든 이들에게 낯설다. 그 길은 누구도 함께 하지 못하는 철저히 홀로 가는 길이어서, 비록 한순간에 사고를 당하여 단체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다 해도 모여서 노래하며 갈 수는 없는 길이다.

 

  이모님은 매장(埋葬)을 했다. 고달팠던 육체는 이제 이 땅의 흙속에 남았다. 세월과 함께 그 흔적은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어서 이 땅의 몸은 하늘로 갈 수 없다. 정들었던 몸을 두고 영(靈)으로 하늘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쁨과 평안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몸을 가지고 사는 이 땅의 개념으로는 편히 쉬는 것이다.

  이모여, 이 땅의 모든 염려는 이 땅에 남은 우리들의 몫이니, 모두 떨치고 이제 하늘에 드셔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길. 오래지 않아 우리 한 사람씩 이모 곁으로 가리다. 지난 팔십육 년여 꿈결 같던 시절,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일들도 떨치고 이제 쉬소서. 다시 뵐 때까지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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