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悟)! 월드컵
오(悟)! 월드컵
브라질월드컵에서 경기를 끝낸 대표팀이 지난 달 30일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일반인들이 활동하기 쉽지 않은 새벽 이른 시간대였는데도 열정이 넘치는 이들이 그 시간에 공항에 나와 “근조, 한국축구는 죽었다”라는 펼침막을 들고 대표팀을 향해 엿을 던졌다. 선수들과 감독, 코치진의 애씀과 수고를 생각할 때 그들의 행동은 경박하고 분별력이 없으며 범죄와 다름없는 감정풀이라고 여겨진다.
그들이 아무리 국민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강변할지라도 동조할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선발과 훈련을 통해 4 년을 기다려온 꿈의 무대다. 국민들은 월드컵 시즌의 문제요 추억거리지만, 선수들은 자신의 몸값을 결정하는 순간이며, 생애에 다시 맞이하기 어려운 호기(好機)이다. 서로의 고민과 쏟았을 땀과 경기로 인한 결과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T.V화면을 보고 응원을 했겠지만 선수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경기를 했다. 그들 중 다수는 유럽을 비롯한 빅리그에서 뛰고 있다. 대한민국 출신 축구선수가 그러한 팀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의 삶을 웅변해 주고 있다. 그들은 세계에서 최상위 수준에 들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개발하며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대표하여 뛰는 선수들이다. 누구도 우리를 축구선진국이라고 하지 않는다. 앞서 나가는 국가들도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경기는 그 속성상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수밖에 없다. 어제의 승자가 꼭 오늘도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의 승자가 반드시 내일 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것이 스포츠의 세계다. 그렇다고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렇게나 정해진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꾸준히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온 세계가 인정했던 우승후보, 개최국 브라질이 준결승에서 독일에게 7:1로 패했다. 자국민만 아니라 누가 보아도 생소하기만 한 결과였다. 삼사위전에서도 네덜란드에 3:0으로 졌다. 자국에서 두 경기에 열 골을 주고 한 골밖에 얻지 못했다. 그것도 축구의 나라 브라질의 국가대표팀이. 여기에 스포츠에 열광하는 매력이 있다. 누구도 방심할 수 없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그런가하면 스포츠에 모든 것을 걸 일도 아니다. 축구는 축구이고 월드컵은 월드컵일 뿐이다. 우승한다고 갑자기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나라나 세계적 강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월드컵은 축구를 통해서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지구촌의 커다란 축제일뿐이다.
우리선수들의 정신력만을 탓하던 시대는 갔다. 실력이 어슷비슷할 때 정신력이지 어느 수준이상 실력차이가 나면 극복하기 어렵다. 월드컵에 있어서의 잘 잘못은 경기를 치르고 돌아온 본인들이 가장 잘 안다. 주변에서 칭찬을 해도 부족했던 이들은 스스로를 알고, 책망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분석을 하고 질책을 할 것이다.
이때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정과 격려다. 그만해도 잘한 것이요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확신이다. FIFA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가 209개국이고 우리의 최근 순위가 57위이니 월드컵 본선에 나갔다는 것 만해도 객관적인 평가정도는 충분히 한 것이다.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해 질 필요가 있다. 선수와 임원진은 열심히 했지만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가 되어 죄송하다고 하고 국민은 정말 수고했다, 이번 일을 밑거름으로 해서 더욱 노력해달라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감독으로 지명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며 커다란 부담과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그 자리가 수십 년 동안 이룩한 그들의 능력과 명예를 매장하는 자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많은 일들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허물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더구나 한번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기는 더 더욱 어렵다. 귀한 인적 자원은 양성에도 힘을 쏟아야 하지만 보존하고 활용하는 일도 그것만큼 중요하다. 그들이 계속해서 한국축구를 위해 일정부분의 역할을 감당하겠지만 심리적 상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느 때 보다 따듯한 인정과 격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