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의미 있는 삶-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변두리1 2023. 1. 27. 09:17

의미 있는 삶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삶은 관계이고 관계는 소통이다. 행복은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데 있다. 알고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몸으로 익히고 행하기는 너무 어렵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인 의사도 제대로 행하지 못해 딸을 제멋대로인 아이로 여기고 자신의 감정을 우선하는 이기적인 삶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세월이 흘러서야 그 원인이 자신의 무심함과 오만함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소통은 자연스럽게 흘러감이다. 이 흐름이 멈추면 불통이다. 제대로 흐르지 않으면 마비가 오고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기능이 온전하지 못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살아간다. 정도 차이일 뿐,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염 여사의 아들 민식, 오 여사의 아들, 곰 같은 독고 씨, 극작가 인경, 참참참을 즐기는 경만이나 흥신소를 하는 곽 씨도 모두 온전하지 못하고 그런 면에서 내 자신도 전혀 예외라 할 수 없다.

행복의 반대개념인 불행을 부르는 이 불통이 언제, 누구와의 관계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곧 소통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염 여사는 그 아들과는 불통이지만 독고 씨와는 소통이 되고 경만의 아내는 딸들과는 소통이나 경만과는 불통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력여하에 따라 불통이 풀려 소통이 되고 그 과정을 거쳐 성숙을 경험하며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다. 요구의 과다와 복잡성 여부에 따라 불통의 정도도 달라져 무한 요구와 섬세함이 필요한 가정에서 가족 간에, 특히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불통이 많고도 깊다. 오 여사, 독고 씨, 곽 씨, 경만에 이르기까지 부부와 부모와 자녀 사이가 불통이다. 가장 친하고 편해야 할 사이가 불통인 것은 서로의 요구와 기대가 과다하기 때문이다.

불통의 양상은 무엇인가?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아들과 대면하는 오 여사의 장면과 요구만 하는 민식과 그의 요구는 무엇이든 거부하는 염 여사에게서 볼 수 있다. 이런 문제에 피해의식을 느끼는 이들이 해결책 혹은 도피처로 이용하는 손쉬운 방법이 술이다. 혼자 마시는 술, 장기간의 술로 문제는 악화되고 자기 자신마저 잃고 만다. 독고 씨에게 도움을 주던 노인과 독고 씨와 흥신소 곽 씨가 그랬었다. 이 불통에서 소통으로 가는데 사용된 것들이 편의점의 야외용 테이블과 삼각김밥 옥수수 수염차이다.

편의점 야외 테이블은 동네의 쉼터이자 작은 여유가 있는 곳이다. 독고와 상대하는 이들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장소가 이곳이다. 공간도 이런 곳이 필요하고 사람도 이런 이가 있어야 하며, 일 중에도 이런 것이 있어야 숨통이 트인다.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곳, 그래서 실내가 아닌 야외인가 보다. 그곳으로 독고는 온풍기를 내오고 옥수수 수염차를 가져가 손님들과 어눌하지만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 불통의 고통을 술로 해결하려는 이들을 향해 독고는 자신이 옥수수 수염차로 술에서 벗어났음을 들려주며 따라준다. 소통의 극적인 장면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훔친 소년이 오 여사에게 걸렸을 때 독고 씨가 나타나 계산하고 소년으로 사과하게 한 뒤, 마치 아들과 동행한 가장처럼 소년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야외 테이블로 가서 삼각김밥을 사이좋게 까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우리 사회에 야외 테이블과 독고 씨 같은 이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편의점 오후 시간대에 일을 하던 시현은 손님이 편하려면 직원이 불편해야 하고 직원이 불편하고 힘들어야 서비스 받는 사람이 편하지요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먼저 손을 내밀고 조금 불편해야 한다. 염 여사가 손을 내밀어 독고 씨가 노숙자에서 사회인으로 복귀하고 독고 씨가 손을 내밀어 오 여사에게 삼각김밥과 편지를 권해 오 여사와 아들의 불통이 소통으로 나아간다. 희수 샘이 손을 내밀어 인경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게 되고 인경의 도움으로 독고 씨의 기억 찾기가 진행된다. 이 과정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함께 유익을 누린다. 인간관계에 전적인 일방성은 지속되기 어렵다. 긍정과 부정 모두 서로 주고받는 양방향성이다. 인경이 독고 씨에게 도움을 주고 그에게서 작품 소재를 얻었고 독고 씨는 염 여사에게 큰 도움을 입고 그의 편의점을 든든히 지킨다. 독고 씨는 오 여사를 돕고 그녀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독고 씨가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이름난 학교나 위대한 책에서가 아니었다. 몇 해 모진 세월을 난 서울역과 가을과 겨울을 보낸 염 여사의 편의점에서 서서히 조금씩 배우고 익힌 것이다. 동료들의 질문에 답하며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고 손님을 응대하며 더듬거리던 말투가 나아졌으며 머릿속에서 피가 돌기 시작했다. 편의점 일을 인계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곽 씨에게 독고 씨는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라고 말한다. 가족을 적어도 인생길에서 만난 손님처럼만 대해도 서로 크게 상처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독고 씨의 편의점 생활은 끝났다. 그곳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모두 머물다 가는 곳이다.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하면 떠나는 인간 주유소. 그곳에서 독고 씨는 주유뿐 아니라 차까지 고쳤으니 다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다. 평생을 반듯하게 살아온 염 여사는 자신의 편의점 직원을 보내는 마지막 이별을 처음 만났던 서울역에서 해야 한다며 따듯한 작별을 한다.

인생에서 고난과 역경이 문제가 아니다. 민식과 인경은 준비되지 않은 성공에 어려움을 겪었고 독고 씨는 힘겨운 환경에서 귀한 깨달음을 얻고 새 출발을 한다. 주인공은 삶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 “겨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같은 독백을 한다. ‘겨우는 조심하며, 소중하게, 배려하며 어렵더라도 소통하며 살겠다는 각오이리라. 그의 다짐을 내 결심으로 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