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세월을 넘어
40여년 세월을 넘어
지지난 토요일에 대학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은 이래저래 가끔은 만나겠지만 방향이 다른 나로서는 졸업 후 40여년 만이다. 몇 명을 빼고는 거의 모든 동기들이 모이는 것 같았다. 식당에서 첫 대면하는 순간에는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한 시간여가 흐르니 40여 년 전의 모습과 조금씩 연결이 되는 듯했다.
변하기 어려운 게 사람인가 보다. 오래전 특성이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에도 이미 스무 해 넘게 쌓여 형성되어 온 것들에 함께한 4년의 세월이 더해졌으니 그 행동과 사고방식이 쉽게 바뀔 리 있을까? 학교교육의 격변기를 지내왔으니 쉽지는 않았을 게다. “전교조”로 상징되는 교육운동으로 큰 소용돌이를 겪었을 게다. 나야 일정 거리를 두고 지켜본 셈이어서 강하게 부딪치는 일이 없었지만 갈등도 적잖이 있었을 게다.
현직에 있는 동기는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일학년 시절에는 저 모습으로 어떻게 교사가 되려나 싶었는데 졸업이 가까워올수록 선생님 같은 모습을 갖추어갔다. 긴 세월 한 가지 일을 하며 살아온 이들이다. 욕심이 생길만도 한 나이인데 사심 없는 선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해도 가는 세월을 느끼나 보다. 중심에서 조금 빗겨선 아쉬움과 애틋함이 보인다.
동기라는 걸 다시 생각해 본다. 길다하면 긴 인생에 4년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것도 방학 빼고 무엇 제하면 길지 않은 기간이다. 이 많지 않은 교제권에서 혈연 지연 학연을 굳이 나눠 어찌할 것인가. 그런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끼리끼리의 힘이 워낙 세서 어디가나 연관이 있는 이들이 만나고 함께 하니 더 어울려 지내게 되나 보다.
그 시절이 내게는 방황의 시기여서 동기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때 어려웠던 이들과 긴 세월이 흐르니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속에 모두 둥글 넙적하게 깎여 서로에게 아픔을 주지 않을 만큼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럿이 내 재주 없음을 알아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을 해 주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게 살고 있지는 않다. 구구절절이 설명하기 어려워 늘 어려우면 그것이 정상이 되어 견딜만하게 된다고 했다.
어느 모임이든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어렵다. 앞으로 자주 만날 것으로 생각하고 꼭 해야 할 일을 마치면 미련 없이 자리를 파하는 것이 모임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길이다. 공통점이 많은데다 서로 편하다고 생각하면 엉거주춤 뭉그적대며 한없이 길어지기 쉽다. 그럴 때에 뜻밖의 일에 마주친다. 술을 즐기는 이들은 분위기에 취해 자제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오히려 작은 오해로 언사가 거칠어지기도 한다.
이런저런 동창모임에 두어 번 가본 것 같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에는 졸업하고 일 년쯤 지나서였으니 모두 중학생으로 밋밋하고 대화도 이렇다 할 게 없었다. 삼십대 초반에 가본 중학교 동창모임은 아예 처음부터 욕과 반말로 어울렸던 듯하다. 그것을 탓할 수야 없지만 섞이기 어려웠다.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모임문화도 만만치 않았다. 내 탓이다. 내가 모난 곳이 많으니 스스로 아픔을 느낀 것이다. 그 후로 어떤 동창 모임에도 가지 않았다. 어쩌다 훨씬 세월이 흘러 대학동기들을 만나게 된 셈이다.
우리 사회가 변한 것인지 모임의 분위기가 부드러웠다. 서로 상처받게 하는 말투를 사용하는 이도,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이도 없다. 술을 강요하는 이도 없었고 품격 있는 대화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보였다. 나이 들며 세상으로부터 점점 밀려나고 친구 사귀기도 어려우니 가끔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에 서로 위로 받자는 의도가 보인다. 인간이 본래 외로운 존재 아니던가?
어느 모임이나 두셋만 모이면 등장하는 골프와 여행얘기에 거리감을 느낀다. 어찌 그리 대화가 궁하단 말인가? 이제 자녀와 건강이 화제로 덧붙여진다. 그것이 생활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런 일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품격 있는 화제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목회자들이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도 겪어보면 그렇지 못하다. 끊이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참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소통의 부재를 느낀다. 만남 후에 그나마 큰 탈 없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나 보다.
오가는 길에 같은 청주에 사는 동기요 목회의 길로 들어서 30여년 사역을 마치고 신학원 원장 일을 하는 김 목사 차에 동승하는 신세를 졌다. 길 헤맬 걱정 없이 옆자리에 앉아 열심히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강도 생각하며 조금은 여유롭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원체 중요한 일인데다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임을 알고 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성격의 한 부분을 알고 여러 면에 재능이 많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무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목회를 하면서 어찌 그리 공부도 하고 총회와 노회 일까지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했는지 존경스러웠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게 염려도 되고 한편 부럽기도 하다.
동기들을 만나 나눈 대화보다 오가는 길에 김 목사에게 들은 이야기에 충격과 은혜가 더 컸다. 하나님의 종으로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쉽게 서지 않는다. 내게 맡겨진 적은 일에도 힘이 부치고 재주가 부족하다. 동기들 얼굴을 보고 사는 이야기를 들으니 40여년이 4년처럼 여겨졌다. 하루 열매로 족하다, 그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