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찬란한 슬픔의 봄

변두리1 2022. 4. 21. 07:38

찬란한 슬픔의 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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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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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 봄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빗속에 연둣빛 새 잎들이 짙어져 간다. 잎들에 눌려 화려함을 잃어가던 꽃잎들이 천변도로위에 내려앉고 비에 젖어 그 형체가 사라져간다. 시절의 주인공이 교체되듯 꽃이 사라지고 잎들이 내 시선을 집요하게 잡아당긴다.

두 주쯤 전이던가? 천변 살구나무에 붉은 색이 돌 때 좋지 않은 내 눈에 헛보이는 것으로 알았다. 미적거리던 겨울이 가고 살금살금 오고 있을 봄을 마음에 그리고만 있었다. 집에서만 며칠을 꾸물대다 나가본 천변에는 살구나무들이 눈에 띄게 꽃봉오리를 부풀리고 더러는 눈부시게 흰 꽃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삼 일만에 온통 피어버린 꽃들을 환영할 마음의 준비가 나는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손님이 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준비 없이 창졸간에 당황하면서 맞이한 느낌이었다.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만물이 그에 합당하게 존중받아야 하는데 귀한 손님을 홀대하는 격이다. 겨울을 견디고 기대감으로 봄을 안고 찾아온 꽃들이 이삼일 지나자 밝고 신선하다기보다 왠지 추레하고 후줄근해 보인다. 따듯한 봄볕은 대책 없이 꽃들을 피워내 거리를 꽃 대궐로 만들고 벌들과 새들과 사람들을 불러 모아도 때 이른 잔치처럼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것 같지 않았다.

무심천변을 돌아 집으로 오던 날, 그곳에 벚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한 방향으로 인파가 몰려가고 너도나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두 해 넘게 우리 곁에 버티고 있는 역병에 눌려 얼굴을 가리고 살 듯 흩어져 있던 이들이 천변으로 몰려나와 꽃길을 걷고 있었다. 봄 속에 여름처럼 때 아닌 강한 햇살로 살구꽃과 벚꽃은 일찍 절정에 이르고 사람들의 들뜬 얼굴은 기대에 부푼 듯했다.

천변의 꽃들은 하루하루 여위어가고 그들을 어찌 맞아야 할 줄 모르는 나는 뭔가 모르는 미진함에 허둥대고 있었다. 어느 새 꽃들은 짧은 향연을 마무리하며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꽃이 떠나야 기다리고 있던 푸른 잎들이 등장할 수 있다. 체념한 듯, 자신들의 임무를 마친 듯, 꽃들은 자리를 뜬다. 아쉬워하며, 미련 없이 바람도 없는 봄날에 툭툭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길 위로 한 번뿐인 짧은 비행에 나선다.

봄이 무르익고 있는가? 방송은 날씨를 알리면서 며칠 벚꽃과 헤어짐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기온이 평상을 회복할 것이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자리를 피해주려는 마음 약한 꽃잎들이 내리는 빗속에 눌러앉아있지 못할 게다. 꽃들을 밀어내는 잎도 야속하지만 쓸어내리는 봄비도 고와 보이지 않는다.

꽃들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부실했듯 그들을 떠나보낼 채비도 갖추지 못했는데 허전함만 남기고 황망히 떠난다. 봄꽃들이 떠나면 연두 빛 싱그러운 잎들이 돋아 오르리라. 잎들이 푸르게 변모하는 것도 보기 좋고 또 조그만 열매들이 자라가고 햇살과 빗물에 영글어 가는 것은 삶에 교훈을 주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래도 내게는 봄부터 가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보다 단절의 겨울 을 겪고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오는 봄꽃들, 그 중에서도 먼저 달려오는 살구꽃과 벚꽃이 고맙고 가상하다.

내리는 봄비 속에 꽃잎들이 자리를 뜬다. 내년에나 다시 볼 그들과 애틋함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눈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헤어진다. 짧고 빠듯한 일정에 쫓겨 허둥대며 행사를 마친 느낌이다. 그들이 가고 나면 그뿐, 한 해가 다 가야 다시 그들을 만난 수 있다는 섭섭함이 가슴 속에 차오른다. 꿈을 꾼 듯 꽃들을 보내고 여름도 오기 전 다시 봄을 기다리기 시작하련다.

돌아보니 올해만이 아니다. 지난해, 또 그 전에도 황망히 맞고 민망하게 그들과 헤어졌다. 세상에 마음 쓸 일이 늘어나서인가? 내가 감정이 무뎌져서인가? 모를 일이다. 예전보다 세월이 무척 빠른 속도로 내 곁을 스쳐지나간다. 한 해가 시작되었는가 하면 사월이고 사월인가 하면 중순을 넘고 있다. 때로는 지금이 팔월인가 구월인가 착각도 한다. 여전한 시절을 살면서 그걸 느끼는 내가 달라진 게다. 하는 일이 점점 단순해지니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는 게다.

빗줄기가 약해지고 다시 가본 가경천변에 살구나무가 푸른 잎들로 싱그러움을 뿜어내며 무르익는 봄을 알려도 내게는 작별한 꽃잎들의 희고 붉은 색들이 눈에 선하고 그리울 뿐이다. 다시 내년이 와 살구꽃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해도 올해처럼 준비 없이 허둥대며 맞고 허망하게 헤어질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다 해도 섭섭해 눈물지으며 화려한 그 모습을 마음에 담고 영랑처럼 다시 올 찬란한 슬픔의 봄을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