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심심했던 하루
토요일 심심했던 하루
2022년 2월 19일 토요일이다. 별다를 것 없는 심심한 하루였다. 내 토요일은 평일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된다. 아침 경건 시간이 한 시간 늦기 때문이다. 딸들이 출근시간에 쫓기지 않아서다. 한 시간을 더 자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출근은 안하지만 오전에 각자 할 일이 있어 나 혼자 집에 있다. 아내는 수학공부를 한다고 일주일에 너댓새는 스터디카페에 간다. 그중에도 토요일은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온다.
이런 날은 내 일상이 더 허물어진다. 간신히 양치질만하고 세수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겨우 한다. 마음속 계획은 이것저것 있지만 그것이 실행되는 날은 많지 않다. 별로 할 일이 없는 것 같아도 오늘 신문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내를 공부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열시 반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휴대폰 영어회화 앱에 들어간다. 지난주에 방심하다 강등되었으니 이번 주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겨루는 시합, 홀로 하는 것이지만 실시간으로 순위가 뜬다. 내 바로 앞 순위 사람이 나보다 4,000여점 앞서 있다. 따라 잡을까 생각하다 천 점쯤 하다가 그만둔다.
특별한 기대도 없이 겨울 올림픽 기간이니 텔레비전이 있는 방으로 끌리듯 행한다. 대통령선거가 20일도 남지 않아 여러 방송에서 나름 전문가들이 나와 분석과 예상에 바쁘다. 근 일 년을 듣던 말들이라 시큰둥하다. 지구가 자전하듯 반복되는 <야인시대>를 두어 채널에서 하고 있다. 그 방송을 즐겨본다. 아마 서너 번은 족히 보았을 테지만 그래도 못 본 부분이 있고, 싸우는 장면은 거듭 보아도 쾌감을 느낀다. 다른 부분은 다 빼고 전반부 싸움장면만 모아 방영해 주면 좋겠다. 아마도 내 안에 공격본능이 있나 보다. 아니면 억압된 감정이 있어 분출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신기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는, 크게 보면 길거리 주먹패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에 내가 왜 그리 몰입하는 걸까?
그 외에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나는 자연인이다>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너 댓 군데는 자연인을 늘 하는 것 같고 한 두 곳은 “세상에 이런 일이”가 나온다. 자연인은 자주 보다 보니 이제는 그게 그거다. 깊은 산속에 혼자 사는 이를 찾아가 약초나 버섯 따위를 캐고 밥해 먹고 비슷비슷한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게 기본이다. 그래선지 언제부턴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더 꽂혀 지난 내용들을 자주 본다. 그것도 작은 공예나 그림 제작에 관한 것들은 그들의 노력과 재주는 비상하지만 그다지 생산적인 것 같지 않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한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대여섯 시간 작업을 한다. 그렇게 만든 것들이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하는 일들은 얼마나 유용할까? 그들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들만큼 내 일에 몰두하지도 못한다. 책을 읽고 영어를 익히고 가끔 생각을 글로 옮겨놓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시원찮은 재주로 설익힌 것들이라도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책을 펴서 읽다가 때로 딴 생각에 잠긴다. 욕심으로 구입한 책들은 늘어가고 진도는 생각만큼 나가지 못한다. 그 지지부진함에 화가 나고 한편은 읽은 것들을 다시 읽기도 하면서 당황스러움과 짜증이 함께 일기도 한다.
무엇을 덥히거나 제대로 꺼내놓고 먹기 귀찮으니 다 해 놓은 것 대신 며칠 전 사다 놓은 빵을 먹는다. 이 게으름을 어찌해야 좋을까? 그래도 뭔가를 먹었으니 몸은 긴장이 풀리고 쉬자고 한다. 티브이는 올림픽 재방송을 쏟아내기 바쁘다. 별 게 없을 걸 알면서 별 걸 기대하는 내가 문제지만 이렇다 할 일이 없으니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실시간 생방송을 찾았다. <매스 스타트>라는 종목이다. 열댓 명이 동시에 출발해 그 큰 운동장을 열댓 바퀴 도는 경기인 모양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해서 준결승부터 치른다. 남자는 두 명이, 여자는 한 명이 결승에 올랐다.
남자 선수들은 줄곧 뒤에 쳐져 가다 마지막에 힘을 내서 한 때는 맨 앞에도 달리더니 은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여자 선수도 뒤에 쳐져 가다 마지막에 힘을 내 1위로 나서더니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5위를 했다. 중계하는 이들은 잘했다 대단하다 하는데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전 세계 그 종목 선수들 중에, 올림픽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도 2,3등이요, 5등을 한 것인데, 실로 어려운 일을 한 것이 분명한데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할까?
내가 늘 성과를 염두에 두는가 보다. 그것도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가 보다. 말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고,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무의식 깊은 곳에는 이기고 싶고 인정받고픈 욕망이 들끓고 있나 보다.
하루가 저무나 보다. 시장에 들렀으니 운동 삼아 걸어 나오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운동화를 신고 조금은 빠르게 걷는다. 가방을 어깨에 걸고 시장 본 것을 받아 들고 집으로 걸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여럿이다. 매 끼니를 꼬박꼬박 먹고는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지 못하는 내가 민망하다. 여느 날과 그리 다르지 않은 2월의 토요일, 봄에 자리를 내주기 싫어하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내가 보낸 하루의 모습이다.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