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보름, 종일 눈은 날리고
정월 보름, 종일 눈은 날리고
설이 둘째 달 첫날이었으니 양·음력이 함께 간다. 어제까지 푸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춥고 새벽부터 날리던 눈은 강약을 오가며 종일 내릴 모양이다. 나흘 후면 ‘우수’라지만 추위는 쉽사리 떠나려 하지 않고 봄이 오는 것은 보이지 않은 채 주변 상황은 어수선하기만 하다. 햇살 화창한 오후처럼 바닥을 사는 이들에게 새 힘이 되는 사건들은 왜 그리 일어나지 않는지 야속하다. 베이징에서도 신나는 승전보는 들려오지 않는다. 시큰둥하다 못해 힘을 빼는 소식들만 여기저기서 전해지고 있다.
뭔 이윤지 자세히 알 수 없는 가운데 지구 한쪽에는 짙은 전운이 감돌고 많은 곳에서는 그 여파로 기름 값이 오를 것을 걱정하고 있다. 가까운 북쪽에서는 해가 바뀌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일곱 번이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그때마다 부랴부랴 국가안전보장회의인가를 열고 결의내용은 천편일률이다. ‘심히’ ‘매우’ ‘대단히’ 유감이라는 말끝에 우리 군이 예의 주시하고 있단다. 의례적인 반응이라면 이제 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 년째로 접어든 코로나19도 우울과 짜증을 자아내기는 차이가 없다. 정말로 두 주면 끝인 줄 알았던 사회적 거리우기가 끝없이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위드 코로나”라며 일상이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또다시 빠져든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눈만 내놓고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생활이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다. 긴 세월 속에 느슨해지는 걸 참지 못한다는 듯 또 다른 변종은 매일처럼 5만 명이 넘는 새로운 감염자를 쏟아내고 있다. 이젠 적응이 될 만도 하건만 우울함은 가시지 않고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떨쳐내기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까, 민주주의 축제요 꽃이라 할 선거도 이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그 정도를 더하고 있다. 오늘이 어려우면 내일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으면 견디겠는데 이 나라를 이끌고 갈 대통령 선거가 국민을 향한 또 하나의 고문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다. 그 유능한 이들은 다 어디가고 참담한 진흙탕 싸움에 어디서나 돈만 퍼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후보 하나 검증하기도 벅찬데 그 배우자들의 끝없는 문제는 유권자들의 머리를 흔들게 한다. 거절할 수 없는 완력으로 들이붓는 물처럼 그래도 하나를 고르기를 강요받으니 그 압박감이 간단치 않다.
이 고비만 넘기면 한동안 포근하고 꽃샘추위 지나면 봄이 오려나? 수십 번을 맞이한 봄이건만 몸으론 쉬이 실감하지 못한다. 이 추위의 끝에 봄이 이 땅을 찾아오고 있을 게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봄비와 봄바람을 데리고 눈과 추위의 끝을 잡고 벌써 우리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으리라. 시행착오로 경험한 일들이 우리로 민주주의의 고속도로 위를 안전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고 싶다.
소설가 최명희 씨가 <혼불>에서 길게 묘사하는 정월 대보름의 풍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잠시라도 혼탁한 삶의 현장에서 은은한 보름달로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삶의 공동체가 허물어지면서 공동의 관심사와 일들도 사라졌다. 마당으로 모이기보다 방안으로 숨어들어 가족도 아닌 각자의 일에 분주하고 방송도 놀이도 개인의 일이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에서 ‘나’로 나뉘고 ‘함께’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봄이 되면 산에 들에 심지어 길거리에도 온갖 나무에 푸른 잎들이 돋아나고 색색의 꽃들이 이 땅을 수놓을 것이다. 한적한 곳에 홀로 핀 꽃도 아름답겠지만 마치 커다란 도화지 같은 이 산하에 뭉텅뭉텅 무리지어 치어나는 그들로 이 땅이 꽃 대궐이 되고 봄꽃 잔치가 펼쳐지는 것 아닌가? 이 땅의 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혼곤함 속으로 몰아넣는 건 수많은 꽃들이 한데 어울려 짧은 기간 보여주는 화려한 색과 향의 향연 때문이다.
겨울을 어찌 건너뛸 수 있으랴. 겨울의 추위 속에서 준비하지 않으면 찬란한 봄을 맞을 수 없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연의 징검다리가 겨울이요 추위다.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통과 위기와 찬바람과 추위의 생략할 수 없는 역할을 사려 눈을 가진 이들은 그 이면을 통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답답해도 조용히 기다리면 가을 열매들이 잘 익은 열매들을 스스로 열어보이듯 그 섭리를 보여 줄 때가 온다. 매번 보여주는 그 진실을 분망한 삶속에 묻혀 그 시절과 함께 보내고 기억치 못함이 현대인의 우매함이다.
쉴 새 없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신문과 방송의 특성상 일상적이고 온건한 일들은 숨고 기이하고 극단적인 것들이 눈과 귀를 파고들어 의식의 바탕을 형성한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울면 또 차오르듯이 ‘우수’ 지나고 ‘경칩’과 ‘춘분’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을 누구랴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 역병이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한들 최고점을 지나 수그러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고 우리 역사가 자유를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겨울에서 여름을 보고 질병의 한 가운데서 파안대소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는 장면을 상상해 볼 일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고 체증처럼 머물던 우울함이 떠나가는 듯하다. 반드시 이 추운 겨울이 가고 이 땅에 꽃피는 봄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종일토록 세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며 눈이 날리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뜨거운 햇살에 청량음료를 들이켜는 바닷가의 한여름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