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알리려는 걸까
무엇을 알리려는 걸까
며칠 간격으로 생생한 꿈을 꾼다. 곧 잊히는 꿈이야 별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오래 기억나는 꿈은 뭔가 예지적인 게 아닐까? 다시 군인이 되는 꿈을 자주 꾼다. 30년도 더 지난 군 생활이 왜 거듭 나타날까? 군 생활이 두렵고 겁도 나지만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내가 군에서의 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다.
조직에서 벗어나 있어 지휘관과의 관계가 소홀하고 제대 후 할 일 물색에 골몰하느라 본업에 태만하다. 그런가하면 계단이나 사다리를 통해 어딘가를 올라가야 하는데 무척 가팔라 힘이 들고 결국에는 오르지 못한다. 며칠 전에는 몇 명이 시간차를 두고 어떤 일을 했는데 결과가 천편일률이다. 꿈에서도 고민이다. 유사한 성과라면 여럿이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스스로 독특하다 생각했는데 별 차이가 없다니 충격이었다.
오늘 새벽녘 꿈도 난해하다. 나는 군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후배와 연만한 동료목회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들과 함께 숙소로 가는데 오래된 승강기를 타야한다. 너무 느리고 불편하다. 반시간은 흘러 찾아간 곳이 내 집이 아니었다. 겨우 내 집에 도착해 문을 여니 집이 좁고 세간이 너저분하다. 오후 네 시쯤이라는데 세 딸이 모두 방문을 열고 쏟아져 나온다. 중학교 일학년, 초등 5학년과 초등 4학년이란다. 아내는 직장에서 아직 퇴근전이다. 통로에서 일하던 눈에 익은 병사가 상담을 원하는 이가 있다는 말끝에 부대와 교회 사정을 전하는데 들으면서도 아스라하다. 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다 깼다.
여러 환경들이 뒤죽박죽이고 사실과 다르다. 부대와 지휘관이 일치하지 않는다. 군인 아파트에는 승강기가 없고, 아이들이 그 나이 때에는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런 유의 어수선한 꿈에서 깨고 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내 현재의 삶이 어수선하고 주객이 전도되어 있으니 근본적 재정비를 하라는 것인가?
현재의 삶을 돌아본다. 내 생활에 시간과 힘의 분배가 잘못된 것일까? 가끔은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과 활동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그때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어떻게든 바로잡으라는 경고인가. 내 일의 특성을 어디에서 찾을까? 며칠 전 꿈이 보여준 천편일률의 결과는 또 무엇을 말함일까? 나만의 차별성이라 주장했던 것이 합리화였다는 것인가? 게다가 상승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아예 상승을 꿈꾸지 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주 남들 앞에선 초연한 듯한 언행을 하지만 현실에선 작은 일에도 안달복달하며 살아온 것이 내 모습이다. 이제 눈앞의 성과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한들 결과에 큰 차이가 없었던 듯하다.
이후로는 내가 계획을 세우고 무언가 하려하지 말고 그분께 맡기며 살아야겠다. 모든 꽃들이 다 아름다운 것이니 장미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굳이 장미를 흉내 내려 할 게 무언가? 민들레도 좋고 할미꽃도 더없이 황홀한 게다. 내 타고난 재질을 오롯이 드러내 나만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내 일을 온전히 이룬 게다.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해 나다움을 잃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크게 경계할 일이 아닐까? 거듭해서 꿈속에 나타나는 것들은 주변에 흔들리지 말고 나다움을 이루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