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필요한 부부싸움

변두리1 2014. 7. 7. 08:53

필요한 부부싸움

 

  어떤 이들은 부부로 수십 년 살면서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불쌍한 마음이 앞선다. 그것은 나에게는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행복하지 못한 부부생활을 했다는 고백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서 같은 부모에게서 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형제자매도 숱하게 싸우며 성장하는데 수십 년을 서로 다른 가정과 환경 속에서 자라고 배운 이들이 어느 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고 완벽하게 맞아 들어 갈 수 있을까? 맞지 않는 것이 정상이며 그때에는 의견조정이 필요하고 여의치 않아 목소리가 커지면 부부싸움이 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부부싸움을 하느냐고 물으면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는 부부싸움을 조금은 조용히, 소리 없이, 격렬하게 한다. 불만이 있으면 아내는 그때그때 이야기 한다(모아서 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한다. 곧 아내의 재 반격이 이어지고 어조에도 감정이 실린다. 이 때 쯤에는 나는 말이 사라지고 침묵으로 들어간다. 뭐라고 대꾸하면 또 다른 반박이 이어지고 내가 한 마디 하면 아내는 서너 마디 하니까 양에서도 밀리고 논리와 말솜씨에서도 차이가 현저하다. 게다가 아내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셋(우리는 딸만 셋이다)이나 있으니 침묵하거나 그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면 침묵투쟁을 한다. 이것이 격렬하면 며칠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적절한 기회가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화해의 표현을 하고 한번 정도 거절하고 화해를 한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것은 대화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서로 평등하지 않고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에서는 한 쪽의 의견만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의견은 필연적으로 조정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충돌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없다는 것은 마치 상하관계처럼 늘 이기고 지는 편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상하관계는 가정에 평온함은 유지되지만 건강한 상태는 될 수 없다. 남편 말이 절대적으로 옳고 아내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유교적 가부장제에서는 부부싸움이 난다면, 아니 집에서 큰소리라도 난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남 보기에 민망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또한 웬만해서는 옆집에서 의견다툼이 있는 지도 모르고 그런 일에 별관심도 없다. 서로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존중을 한다면 보다 유연한 의견제시와 조정으로써의 다툼은 민주적인 가정에서 습득해야 할 기본소양이다.

 

  자신의 의견도 정당하지 않으면 반대에 부딪히고, 때에 따라서는 부결당하는 경험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이 늘 옳은 것으로 여겨지면 자신을 바로 볼 수 없고 독재자 같은 성격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민주적인 절차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항상 자신의 의견을 굽혀야 하는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의견 자체를 표현하지 않고 상대의 의견에 맹종하는 수동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 민주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부부 사이의 불만은 과도하게 참거나 억제할 것이 아니라 적당히 드러내는 것이 현명하다. 어느 쪽이든 이러한 불만이 마음속에 쌓이면 병이 들거나 극단적인 행동으로 기물을 부수거나 혹은 자신이나 남을 해할 지도 모른다. 평상시에는 평안하다고 해도 그것은 위험물을 안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로의 불만이 다루기 힘든 괴물이 되기 전에 그러한 요소들을 그때그때 제거해 가는 것이 건강한 삶의 방법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도 이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 더 교육적일 수도 있다. 어느 가정의 아이들은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부부싸움을 너무 많이 보아서 비교육적이고 어느 가정의 아이들은 온건하고 건설적인 의견다툼도 본적이 없어서 비교육적이다.

 

  적어도 부부가 싸우는 순간만큼은 평등하다.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를 유지한다면 그 과정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부부싸움은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다. 잘하면 둘 다 승자가 되고 잘못하면 둘 다 패자가 된다. 부부는 서로에 의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의견조정을 거치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그 굽이지고 오르내림이 있는 호젓한 길로 가정공동체를 평생을 함께 밀고 가는 이들이 부부이다. 순간순간 드러나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익숙해지려 노력하며 서로에게 점차 물들어 같은 색으로 닮아 가는 여정이 아름답다. 생각이 다를 때 서로 정겨운 어조의 낮은 목소리로 다름의 폭을 좁혀 갈 일이다. 그래도 간격이 뜨면 조금 더 목소리를 키우고 여전히 일치점을 찾지 못하면 그때는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의견을 조정해 보자. 그 후에는 잠시 서로 쉬면서 모두가 승자인지 패자인지 따로 생각해 볼일이다. 서로의 차이가 한결 좁혀지고 둘 다 인정할 만한 좋은 방법이 이미 눈앞에 나타나 있으리라. 나는 친한 이들이 지난밤에 부부싸움을 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하는 것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