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지하였나 보다. 아침인지 상이 차려졌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작은 형이 있었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손님이 한 분 와 있다. 아침을 먹으려 손님이 기도를 해 주었고, 앉는 곳 한쪽 귀퉁이 비닐이 벗겨진 소파를 보니 희고 누런 작은 뱀이 있었다. 크기가 작아 그리 무섭지 않아, 작게 “여기 뱀이 있네” 했더니 작은 형이 발로 밟고 자루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장면은 바뀌어 하늘을 보니 구름 끝이 까맣다. 그곳에 군인들이 있고 전단지가 뿌려진다. 내 손에 떨어져 보니 신문인데 기억나는 기사는 없다.
새벽녘에 꾼 꿈이다. 이상하다. 꿈처럼 허망한 게 있을까? 아니면 꿈처럼 예지적인 게 또 있을까? 무의식이 일으키는 쇼라 할 수 있으려나. 깨고 나면 흐지부지 잊어버리는 게 열에 아홉인데 이건 그렇지도 않다. 왜 다 세상을 떠난 일차적 가족들이 그렇게 모여 있었을까? 결혼 전 가족이 여섯 식구였다. 셋은 생존해 있고 셋이 하늘나라에 갔는데 죽은 이들이 모두 모여 있다니, 그것도 지하에서 함께 밥을 먹었으니 께름칙하다.
꿈속에서 밥을 먹는데 손님이 내 밥그릇에 금을 긋고 반은 자신이 먹겠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상해 “나는 됐다”고 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함께 한 가족들이 모두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또 생뚱맞게 소파에 작은 뱀이 무언가?
깨어나 잊으려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꿈에선 별 것 아니었던 작은 뱀조차 계속 뇌리에 남는다. 내 상식에 비추어 흉몽 같다. 지하공간에 죽은 이들이 모여 있고 그들과 밥을 먹었으니 생활을 같아한다는 것 아닌가? 내가 죽을 꿈인가? 죽는 순간이야 언젠가는 올 것이고 자녀들 다 장성했고 몇 십 년을 더 산다한들 그리 달라질 게 없을 테니, 큰 아쉬움이나 애석할 것은 없다.
저녁에는 무슨 얘기 끝에 아내가 지난 밤 꿈 얘기를 한다. 좋은 게 아니어서 넘어가려던 나도 그 꿈을 털어놓으니 분위기가 애매하다. 대화 끝에 생명보험이나 하나 들어야겠다고 했더니 반대한다. 주변에서 보험 들고 죽음을 맞은 이들 소문을 많이 들었나 보다. 아내는 그들이 보험을 들지 않았으면 살았을 것을, 보험을 들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죽음은 피할 수 없었지만 현명한 결정으로 남은 이들에게 얼마간 경제적 보탬이 되었을 테니 잘한 선택이라고 이해한다.
어쨌거나 아내가 불편해하고 반대하니 보험은 포기해야겠다. 뱀은 무엇이었을까?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유혹이다. 나는 유혹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고 판단한다. 취해갈 무엇이 있어야 유혹할 것인데 내게는 그럴만한 게 없다. 빈털터리를 찾아가 사기 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뱀에게서 성적인 것을 연상한다면 더욱 적잖은 나이, 보잘 것 없는 외모, 약한 힘, 걱정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디서든 내 신분을 분명히 밝힌다.
열시가 넘어 잘 시간이다. 아내와 생각지 않은 말다툼을 했다. 이게 꿈땜이었으면 좋겠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는 혼자 살았으면 편했을 것 같다. 다른 이들이 잘 의식되지 않고 인간관계가 서투니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럴 수 있었겠다. 아내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이 예민하다. 여러모로 나를 불편하게 하고 얽어맨다. 자신은 그게 옳다고 여기겠지만 아닌듯하다. 매사를 따지고 들 수도 없고 말로 해봐야 당할 수 없으니 나만 답답하고 마음이 상한다. 누구를 만나든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한 두 마디를 마음에 담고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스스로 고민을 하다, 곁에 있는 내게 트집을 잡는다.
나는 아내에게 다른 모임에도 참석하고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아내는 내가 하는 일에 수시로 시비를 걸고 못하게 하려 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 곁에 서 같은 일을 해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한 가지 일을 오래하면 못 말려서 몸살이 나나 보다. 내 하는 일이 불안한지도 모른다. 내게는 자주 불만이 쌓여 원망으로 발전하고 해결 안 된 것들이 마음속에 쌓이는 것 같다. 새삼스레 권태기인가 아니면 갱년기를 다시 겪는가?
“메멘토 모리”라는 구절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Remember death.] 정도의 라틴어 표현이리라. 육십이 되기까지는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고 주변에서 죽음을 맞는 이들이 있어도 나와는 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그때도 장례식에 서 절차를 진행할 때에는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고 진지하고 엄숙했을 게다.
죽음이 내게는 문을 열고 삶의 공간을 옮겨가는 하나의 매듭이다. 풀들도 매듭에 닿아 시간을 끌며 성장이 둔화되었다가 매듭을 통과하면 급격히 자라난다. 근래에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것이 마음에 고여 있기도 하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아 게으름부리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 않고 제 속도를 유지하며 꾸준한 걸음으로 나아갈 일이다. 더 잃을 것이 없고 욕심 부려 크게 얻을 것이 없음을 알지 않는가?
새벽녘 한 자락 꿈을 죽음이라는 정신적 매듭을 기억하라는 경고로 듣고 한 박자 늦추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삶을 살자는 다짐을 한다. 아내와의 말다툼을 액땜으로 그 꿈이 내 기억에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