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변두리1 2021. 4. 14. 19:26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1990년생 다큐멘터리 감독인 이길보라가 썼다. 많은 이들을 향해 이 길을 보라고 제시하는 듯하다. 부모님들이 늘 하던 말씀이 괜찮아 경험이란다.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해보고 실패하는 게 낫다는 게다. 얼마나 긍정적 생각이며 진취적인가? 고집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1 자습시간에 관심 분야의 책을 읽고 있으면 선생님은 그럴 시간에 수학문제를 풀고 영어단어를 한 개라도 외우라고 했다. NGO활동가나 다큐제작 PD가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좋은 학교가고 언론고시를 치르고 조연출로 몇 년을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길이 합리적이라 여겨지지 않고 왜 그 길로만 가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던지 이길보라는 현장에서 그 일을 하는 이들을 만나고 그 과정을 보기위해 고1에 잠시 학교를 쉬고 8개월에 걸친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이 개인의 즐거움과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넓히고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되리라 확신하고 계획서를 짜고 여럿의 도움을 받아 여행경비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한다. 여행을 위한 용구와 기도 그리고 800여만 원을 비롯한 응원과 지지를 받아 배낭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로드스쿨러>였다. 학교 밖에서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이르는 말아다. 스승이 있는 곳이면 세상 모든 곳이 배움터요 그러한 곳들을 찾아 배우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 로드스쿨러. 글쓴이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그는 떠났던 고교에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고교를 자퇴하고 어떻게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여행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길은 학교다>로 펴냈다. 영화를 완성하고 배금을 하고 나서 영화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하고 글을 쓴다.

이길보라는 두 분 부모님이 농인(聾人)이다. 농인에 대한 상대어가 청인(聽人)인가 보다. 이길보라는 청인이다. 그는 자연스레 농인과 청인의 경계에서 자라나고 살게 된다. 이 경험은 많은 것을 글쓴이에게 알게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 눈치가 빨라졌고 애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많은 오해와 동정도 받았을 게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201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농인엑스포와 워싱턴 DC에 있는 세계 유일의 농인 종합대학인 갤로뎃대학을 방문하기 원했고 딸이자 통역사로 동행하지 않을지를 물었다. 미국방문에서 보라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 때를 기점으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농인의 삶을 보여주는 농인부모의 반짝이는 세상을 담은 영화와 같은 제목의 책이 <반짝이는 박수소리>.

보라의 애인은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일본인이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 보라가 고교 때 자퇴를 하고 로드스쿨러가 되고 영화를 찍은 데 비해 그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방황하다 힙합을 하고 미국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자기주도성이 강한 보라는 판단도 빨랐던 것 같다. 여행차 한국을 들렀던 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그의 일정에 맞추어 그의 부모님이 사시는 후쿠오카로 동행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시댁에 첫인사를 간 셈이 되었다.

양가의 상견례도 일사천리로 어쩌다보니 상견례가 되었다.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일본 개봉을 맞아 배급사의 초청으로 보라의 부모님이 도쿄를 방문하게 되자 애인의 부모님이 후쿠오카에서 또한 도쿄로 오신다. 수어(手語)를 볼 수 있을 만큼 밝고 서로 편안히 대화가 오갈 수 있도록 조용하고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곳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대화도 만만하지 않았다. 애인 부모님의 말을 애인이 영어로 옮기면 보라는 머릿속에서 한국어를 거쳐 수어로 옮기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보라 부모님의 말은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상견례의 결론은 너희들의 삶이고 결정이니 둘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보라는 더 전문적인 영화공부를 위해 유학을 결심한다. 여러 고심과 탐구를 거쳐 네덜란드의 필름아카데미 석사과정에 진학한다. 그 곳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그가 수업하는 과정에 열 명을 선발하고 적지 않은 행정인원과 교수들과 멘토들이 함께 한다. 급우들은 서로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공동 작업을 거친다. 성적도 등급을 나누지 않고 동기들을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항목별로 뛰어난 부분과 합당한 부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자세히 서술된 리포트를 받고 중요한 것은 개인의 속도에 맞춰 연구해 가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삶의 방식이 많이 다르다. 직책에 따른 권위의식이 없고 서로의 사생활에 지나친 개입이 없다. 공적인 일처럼 느껴지는 일도 개인적 형편의 고려가 우선된다. 보라는 첫 발표부터 충격을 겪는다. 자신을 소개하는 일에서 한국 같으면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농인이라 해도 별 반응이 없다. 1에 학교를 자퇴하고 8개월 동남아 배낭여행을 했다고 해도 그래서 어쩌라고식의 반응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후로도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일에는 반응이나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과정을 거치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익힌다.

동기 중 하나는 프랑스 파리의 사진 축제에 참여하며 영상통화로 워크숍에 함께했다. 인터넷 연결 상태도 좋지 않고 실외여서 소음이 심한데다 자기의견을 자주 피력해서 불편을 느꼈는데 동기들은 그렇게라도 수업에 참여할 권리가 그에게도 있고 불편을 느끼는 이는 그것을 또 드러내고 조절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철저히 개인의 편익에 기반하고 있다. 심지어는 학기 중간에 수업시작 시간을 바꾸는 일도 일어난다. 동기 중 두 명이 수업시간을 30분쯤 늦추면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는 일로 모두의 의견을 물어 조정을 한다. 피해가 가지 않는 한 개인의 편의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보라의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월남전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그 피해자들을 여성의 관점에서 조명한 <기억의 전쟁>의 추가촬영과 편집을 다시 하는 일이 생기고 그 시점이 세월호 사건의 추모와 겹쳐진다. 감독의 시선을 벗어나 전문편집자를 만나고 베트남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사건의 주인공들도 한국에 오게 된다. 사건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가 달라지고 영화는 완성되어 여러 곳에서 상영된다. 월남의 피해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들과 만나고 그들 나름의 아픔과 협조를 표현하고 연민을 나누는 과정이 눈물짓게 한다.

걸쳐 용기 있게 도전하고 없는 길을 내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이 길을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물론 보라가 이름이고 이길은 부모님의 성을 모두 딴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 뿐 아니라 나이와 지위를 넘어서서 이런 사회분위기와 시도가 더 많아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