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잎사귀에 얼굴이 겹치고

변두리1 2021. 4. 7. 21:03

잎사귀에 얼굴이 겹치고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그 햇살을 되비추는 사철나무의 연녹색 잎사귀는 더욱 찬란하다. 초등학교 담장을 이루는 사철나무가 이리저리 삐져나와 한참을 이룬 산책길은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인적이 많지 않아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오묘하고 신기한 잎들의 색깔을 들여다본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볼수록 신선하고 어떤 어휘로도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봄은 확연히 생기가 솟아나는 계절이다. 늘 푸른 나무지만 봄의 느낌이 가장 좋다.

사철나무의 꽃말이 변함없다라는데 세심히 보면 왜 변화가 없을까? 인터넷을 보니 우리는 그냥 사철나무라 하지만 북한은 푸른 나무’, 옛 사람들은 동청(冬靑)이라고 했단다.

춥고 단조로워 지루한 겨울을 나고 맞이하는 봄볕은 따사롭다. 햇살 가득한 오전에 마주하는 사철나무 잎사귀의 고혹적인 빛깔에 봄이 깊어지고 있음을 본다. 사철나무를 보고 있으니 몇 년 세월을 함께 한 분이 생각난다. 영원한 청년 같은 이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건 조금 엉뚱하게 영어 세미나 모임이었다. 건축 일을 한다고 소개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흔히 노가다라 부르는 막노동이었다. 그렇게 살면서도 영어가 좋아 그 모임에 수십 회 참여하고 있단다. 우연히 숙소가 같아 며칠 지내며 답답해하는 몇 가지를 설명해 주었더니 어느 날 아주 우리 교회주변으로 이사를 왔다. 내게 영어를 배우겠단다.

짧은 기간 함께 해 보니 기초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도전정신이 가득해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일터에서도 일보다 영어성경 암기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렇다고 일에 꾀를 부리는 것이 아니어서 주변사람들에게 성실함을 인정받고 있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분은 한글로 토가 달린 발음으로 억양과 관계없이 성경구절을 암기하고 있었다. 그분 말로는 한 구절을 수천 번은 읽고 외우고 잊어버리기를 되풀이해서 수백구절을 외우고 있다고 했다.

어떤 이의 얘기를 들었는지 청주에 야간신학이 있다니 편입해 두 학기했던 신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하나님의 일에는 소명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이 열심이니 말릴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분과 유사한 목회자가 이끄는 영어 세미나를 다녀와서 본인은 그곳에 더 맞는 것 같다고 이사를 했다.

돈키호테 같은 두 분이 만나니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믿음으로 목사가 되고 선교사 임명을 받아 필리핀에 파송되었다. 그곳에서 대여섯 해 선교사 일을 하셨을 게다. 필리핀 사람들이 원체 낙천적이고, 놀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 나름 사역을 감당했다고 한다. 아마도 어려움은 설교에 있었을 테지만 외우는 성경이 많아 상황과는 맞지 않아도 그냥저냥 넘어 간 것 같다.

많은 시간과 재력을 들인 선교사보다 그 아내 되는 분이 의사소통이나 영어로 성경을 읽는 것이 더 빨랐다고 한다. 그분은 용기와 도전정신으로 교회를 세우고 실생활로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다, 육체적 한계를 느껴 사역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했다. 그동안도 계속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순수한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른 체구에 훌쭉한 얼굴로 만년 청년 같았던 분이 이제 칠십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 요즘도 그분을 보면 푸른 나무가 연상되고 새 잎이 나는 듯 싱싱함이 느껴져 못할 일이 없을 듯하다.

사철나무 잎사귀에서 그분을 연상하다 어느 새 내 스스로를 돌아본다. 왜 아직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듯 활동성이 약하고 싱싱한 새 잎을 내놓지 못하는가? 그분보다 내가 더 노인 같다. 내게 도전정신과 다소 무모할지라도 과감한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상념을 떨쳐내고 다시 사철나무 잎사귀를 본다. 여전히 햇살을 튕겨내는 연한 녹색이 눈부시다. 봄날의 하루가 또 깊어가고 있다. 하늘은 푸르고 대기는 포근해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다. 사철나무 잎사귀에 그분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내리쬐는 햇볕이 생각보다 따갑다.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