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꿈 이야기

변두리1 2021. 1. 26. 21:40

꿈 이야기

 

어제 새벽녘이었던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의 꿈을 꾸었다. 어딘가 갇힌 공간에서 기어올라 좁은 창문 같은 공간을 통과해 옷에 오물을 묻히며 나올 수 있었다. 꿈은 이어져 가파른 벽을 통과해야 했다. 수직에 가까운 벽을 타고 올라 작은 공간을 통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섰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험한 벽에 붙어 조금 안전하게 발 디딜 곳을 마련했다. 아래로는 어떤 모르는 여인이 열심히 벽을 오르다 미끄러져 추락한다. 앞에 놓인 작은 공간 한쪽을 힘껏 잡고 몸을 끌어올려 보니 이제 평지까지가 너무 멀다. 아래 나무 널판이 놓여 있는데 비스듬해 위험스레 보인다. 내 발을 뻗으니 조금만 더하면 닿을 것 같아 손을 놓았더니 나무 널판이고 평지, 땅이다.

하루를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알 수가 없다. 꿈의 뒷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개꿈이려니 넘어가려도 그와는 결이 다른 꿈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과거가 따라온다. 어느 높은 곳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있고 한참을 불안스레 오르다보면 사다리가 내 앞으로 넘어져 놀란다. 학교에서는 내 반 교실이 꼭대기 층에 있는데 그곳까지 가기가 너무 힘겹다. 쉬는 시간에 오르내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올라가는 것 자체가 큰일이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는 어려웠지만 내 힘으로 통과한 것이다.

내 삶에 어떤 좋은 일이 생기려나? 어떤 부분에서 내 수준이 한 단계 상승하려는지 기대감이 커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의식의 표현이라는 꿈 한 자락에 휘둘릴 만큼 내 삶이 허약한 게다. 따지고 보면 나만 그럴까? 요즘 회자되는 잘 나가는 이들의 일탈 행동도 그들의 부실한 토대를 보여주는 것일 게다. 마치 폭설이 내린 도로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고 있는 자동차들을 보는 느낌이다. 단단하고 멀쩡해 보여도 실제는 기본 없이 허약하고 수시로 흔들리는 게 살아가는 모습인가 보다.

사다리를 오르고 계단을 오르고, 어딘가 절실하게 오르고 싶은 게 내 잠재의식에 자리하고 있나보다. 현실에서 말로는 만족한다고 해도 지금 이대로 됐다고 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 말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목표에 대한 어중간한 좌절과 체념의 결과는 아니려나. 일상의 삶에서 결핍을 느끼지만 막상 누군가 무엇이 부족하냐 물으면 딱히 대답할 게 없다. 배경 좋은 이들이 명품들을 소유하고 있다면 나는 값싼 보급품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보급품도 기능이 충분하고 품질도 조악하지 않다. 그렇지만 어쩐지 뒤처진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과 물질적인 것이 다가 아니며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한다고 하면서 그들 앞에 서면 주눅이 든다. 더러 어쩌다 만난 이들이 노후 생활에 대한 준비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에도 불편하기는 매 한 가지다. 어쩌란 말인가?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게 태인 몫인 것을. 그들이 내게 관심을 갖지 않고, 묻지 않는 게 다행일 뿐이다.

꿈속에서나마 이루지 못하던 걸 이루어 낸 게 가상하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했으니 내 자신이라도 좀 더 자신감이 차오르지 않았을까? 어려서 별 것 아닌 것도 선생님 칭찬을 받으면 크게 인정을 받은 듯싶고 왠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별 생각 없이 칭찬한 비전문가의 한 마디도 힘을 돋우기에 충분했던 경험이 있었다. 꿈이기에 더 기대고 싶은 현실이다. 숱한 인물들이 꿈의 계시를 받아 무언가를 이룬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꿈을 사다리로 훗날 왕이나 나라의 2인자가 되기도 하고, 긴 세월 고민하던 것을 해결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꿈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먼저 보기도 했단다. 마치 신묘한 꿈에서 내게 다가올 상서로운 조짐을 본 것만 같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 지금보다 내 삶이 더 좋아질 것은 무엇이며 더 열악해진다 한들 달라질 것이 무언가? 아니다. 더 좋아지기는 어렵다 해도 더 나빠질 길은 얼마든지 있다. 내 자신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고 자녀들 하는 일이 한 순간 잘못될 수도 있다. 현 상황이 유지되는 게 최선은 아니라 해도 넉넉히 차선은 될 수 있지 싶다. 차선에 만족하지 않을 순 있지만 그 아래로는 평균, 차악, 최악의 상황들이 있다. 현재의 상황에 감사할 것들이 적지 않다. 불평할 목록보다 훨씬 더 긴 감사거리들이 있을 게 분명하다.

현실이 차선이라 해서 기대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최선의 수준으로 날 데려다 준다면 오직 감사할 뿐이다. 그게 내 노력만으로 되지 않으며 더러는 내 의지와 무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다. 어떤 이들은 운과 때라고 하지만 나는 내게 부여된 뜻이 있어야 한다고 짐작한다. 그 일이 내게 맞아야 감당할 수 있다. 아무리 무인(武人)이 잘 준비되고 실력이 있다 해도 그의 역할을 요청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기량을 펼칠 수 없다. 또한 힘껏 준비해 보려 해도 허락된 재능이 현저히 미치지 못하면 가능하지 않다.

그냥 편하게 내 중심으로 생각하자. 어느 면인지 모르지만 한 단계 수준이 향상될 모양이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살아가리라. 이전에 아직 그 일을 내가 못하는 것으로 여겼다면 이제 내 안에 작은 목소리가 얘기하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여겨 한 걸음 떼어보고 싶다. 내가 애써 힘겨운 공간을 통과했고 벽을 올라 평지로 내려 선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비록 꿈에서긴 하지만 말이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안으로부터 몽글몽글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