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도
상 도
소설가 최인호의 장편으로 다섯 권으로 된 작품을 읽었다. 독서 후 한동안의 세월이 흐른 뒤 글을 쓰기는 참 어렵다. 내용이 아물거리고 감흥이 점차 삭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쓰지 못한 것도 적지 않다. 같은 이름의 드라마도 있어 조금 보았지만 책과의 연관성은 크게 느끼기 어려웠다. 임상옥이라는 상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서도 추사 김정희와 홍경래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짜여 있다. 그의 위기를 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석숭 스님도 이채롭고 도가 높은 인물임이 분명하다.
임상옥에 이르게 하는 겉 이야기의 끈이 기평그룹 김기섭 회장이다. 바퀴에 미친 “바퀴벌레”다. 그의 죽음과 지갑으로부터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갑에서 나온 한 구절, “재상평여수 인중사형직(財上平如水 人中似衡直)”, 재물은 물처럼 고르고 사람은 저울처럼 바르다. 가포(稼圃), 임상옥(林尙沃)의 상업철학이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에 존경받는 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의주의 거상(巨商)이었다. 그냥 상인이 아닌 문(文)을 겸했고 분명한 상(商)의 철학(哲學)을 간직하고 벼슬길을 사양했지만 곽산군수를 지내고 귀성부사로 승진되었으나 비변사의 논척(論斥)을 받아 투옥을 당해 어려움을 겪었다. 상업뿐 아니라 모든 것에서 물러나고 빚을 탕감해주고 채마 밭을 가꾸며 수도자처럼 말년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 임봉핵은 장사꾼이었다. 다소의 학식은 있었으나 부패한 시대에 벼슬길은 막혀 있었다. 그는 아들 임상옥에게 산해관을 드나들며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편액을 설명하며 천하제일상(天下第一商)이 되라고 교훈한다. 그 부친이 빚만을 안기고 죽자, 빚에 걸려 의주 상인 홍득주의 가게 점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성실함과 빼어난 안목으로 인정을 받아 사윗감으로 낙점한 주인은 그를 연경으로 보내 능력을 알아본 뒤 독립시키려 했다.
연경길에서 풍운아 이희저를 만나 친구가 되고 친구를 위해 찾은 홍등가에서 장미령을 만난다. 딱한 사정을 듣고 고민하다 활인도(活人刀)가 마음에 있어 거금(巨金)을 들여 여인을 그 세계에서 건져내 자유를 준다. 여인의 간청에 여인이 내미는 흰 비단 속옷에 “의주상인 임상옥(義州商人 林尙沃)”이라 적어준다. 돌아온 임상옥은 찾아온 손님에 의해 연경에 한 여인을 두고 왔다는 얘기를 들은 주인 홍득주에 의해 상계(商界)에서 추방당한다. 주인의 신임을 배신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임상옥은 재기를 위해 노력하지만 어려움이 더할 뿐이고 동생들을 잃고는 다시 의주 금강사의 추월암으로 들어가 불제자가 되려 도원(道元)이라는 법명을 받고 수행 중에 박종일이라는 상인이 찾아와 연경에서 임상옥을 찾는다는 말과 함께 상옥의 모친 사정을 전하며 다시 상인의 길로 나서길 권유한다. 금강사의 주지 석숭에게 사정을 아뢰고 다시 환속할 때에 석숭은 그에게 삶의 세 가지 위기를 일러주고 그들을 넘길 비책(祕策)으로 사(死)와 위기의 순간에 볼 것을 부탁하며 정(鼎)을, 마지막 위기를 위해서는 본인이 사용하던 계영배(戒盈杯)라는 찻잔을 내어 준다.
임상옥을 찾던 이는 생이 잘 풀려 귀족의 부인이 된 장미령으로 잊을 수 없는 은혜를 갚으려 함이다. 그로인해 다시 연경과 무역길이 열리고 상옥은 홍삼거래를 한다. 극상품 홍삼 오천 근을 가져가 제 값을 받으려 하자 연경 약재상들이 불매운동을 일으킨다. 그때까지 근에 은자 25냥씩 거래하던 근당 40냥으로 올린 것이다. 연경이 가장 큰 시장이었고 그곳에서 팔지 않으면 큰 손실을 막을 수 없을 때였다. 사절단이 돌아갈 때가 되도록 한 곳의 상인도 홍삼을 사러 오지 않았다. 그들도 홍삼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면밀히 상황을 살피며 기 싸움을 한 것이다. 상옥은 석숭의 사(死)의 의미를 추사의 도움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위기 속에 상옥이 다시 내건 홍삼 가격은 한 근에 은자 45냥이었다. 홍삼에는 상옥뿐 아니라 연경 약재상들의 운명도 걸려 있었다.
조선으로 돌아오는 날, 양쪽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자 상옥은 홍삼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연경의 약재상들에게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들은 불을 끄기를 애원하고 불에 탄 것의 값까지 계산하여 근당 90냥 가까운 가격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대국과의 협상에서 승리하고 막대한 이익을 얻은 것이다.
한동안의 세월이 흐르고 서북지방의 불만이 증폭되면서 홍경래가 등장한다. 혁명을 꿈꾸는 그에게 군사들이 모여들고 원하는 이들을 포섭하고 영입한다. 그들에게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 임상옥이었고 홍경래는 수하에 든 이희저의 추천서를 들고 임상옥에게 찾아와 회계로 써줄 것을 요청한다. 홍경래의 사람됨을 알아본 상옥은 그를 고용하고 그는 빈틈없는 성실함과 일솜씨로 인정을 받는다. 마침내 선문답하듯 상옥은 거사에의 참여를 요청받는다. 응하지 않으면 처단하려는 의지다.
상옥은 두 번째 위기임을 깨닫는다. 다시 추사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추사에게서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유효한 삶의 교훈을 터득한다. 세 개의 발로 서는 솥이 정(鼎)이니, 한 사람이 독점하려면 안정되게 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얻고자 하는 명예와 권력과 재물, 그것이 세 개의 발인 셈이다. 각자 자신들이 가진 것에 만족해야지 겸하여 가지려면 설 수 없다는 원리였다. 돌아온 상옥은 홍경래에게 거절의 표현을 하고 홍경래는 상옥을 처단하려 하나 상옥에게 설득을 당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임신년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참여했던 많은 병사들이 죽고 간부급들은 처자식까지 죽고 노비로 전락하는 참상을 당한다. 이 때에 상옥과 친구를 맺었던 이희저는 반역의 무리로 처형을 당한다. 그 반역의 무리를 진압하는데 상옥은 의병을 모으는 방수장(防守將)이 되고 많은 재물을 내어 의병과 관군의 사기를 돋우어 난을 진압한다. 난이 진압된 후 상옥은 현 사단장과 유사한 종2품의 오위장에 임명되나 평안감사를 찾아가 벼슬을 사양하고 진압에 공을 세우고 전사한 원숙공(元淑公) 허항과 다른 여섯 의사를 기리는 표절사의 건립기금을 내기로 하고 대역죄인 이희저의 매장허락을 받아낸다.
몇 번의 벼슬을 사양한 임상옥에게 임금의 특지로 곽산 군수에 임해진다. 임금의 특지는 사양하면 임금을 거스르는 것이니 부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관기(官妓) 중에 송이라는 아이가 있어 눈에 확 띄고 왠지 익숙해 노비안(奴婢案)을 살펴보니 이희저의 유복녀였다. 기구한 운명이요 묘한 인연이었다. 그녀를 기적(妓籍)에서 빼내 양민으로 만들어 줄 방법은 자신의 후실로 삼는 방법이 유일함을 알고 연기(演技)를 펄쳐 이뤄낸다.
몇 번의 수청을 극도의 노력으로 견뎌내나 송이의 양모의 노력과 송이의 청으로 무너지고 들은 뜨거운 사이가 된다. 송이는 양민이 되고 상옥은 승진이 되었다가 비변사의 논척으로 오히려 옥에 갇혀 곤경을 치루고 위리안치(圍籬安置) 형을 받는다. 형에 처해진 표면상의 이유는 집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었으나 근원적 원인은 대역죄인의 시신을 매장하고 그 자식을 노비에서 양민으로 만들어 후실을 삼았다는 것이었다. 그를 감시하는 조상영을 접대하면서 요청에 따라 계영배(戒盈杯)를 썼는데 예의를 따라 가들 따르면 술이 사라진다. 조상영은 임상옥이 자신에게 결례(缺禮)를 범했다는 오해는 풀었으나 기분 나쁜 잔이라며 계영배를 정원으로 던진다. 그 잔은 깨어지고 조상영이 황황히 돌아가 접대는 끝이 난다.
미안함에 좋은 쪽으로 보고해 임상옥은 자유의 몸이 된다. 깨어진 계영배를 가지고 그 제작의 비밀을 알기위해 광주의 관요(官窯) 분원을 찾아 총감독을 지낸 변수(邊首) 지순영 노인에게서 계영배의 탄생과 우삼돌이자 우명옥의 이야기를 듣는다. 백자의 특별한 기술을 익힌 생의 애환과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경험한 그 분야의 최고수가 만든 것이 계영배였다.
상옥은 어렴풋이 짚이는 바가 있지만 그 잔을 어떻게 석숭스님이 간직하고 있었나에 의혹을 품고 금강사를 찾는다. 자신을 가르쳤던 주지가 된 법천을 만나 석숭의 죽음을 전해 듣고 계영배에 작게 새겨졌던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구절을 생각한다. 석숭은 곡 우명옥이었다. 금강사에서 일천배(一千拜)를 마치고 돌아온 상옥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겨우 완성된 큰 집을 부수고 아담한 집을 만들었고 송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빚진 자들을 불러 부채를 탕감하고 금은을 나누어 준다. 상업의 일체를 박종일에게 맡기고 채소를 가꾸며 시문을 짓고 말년을 보낸다.
추사에게 인삼을 선물하며 소식을 전하자 추사는 상옥에게 상업지도(商業之道)라는 글과 그림을 보내며 서로의 성숙을 전한다. 고수끼리의 문답이었던 것이다. 추사는 상옥의 득도에 가까운 마음과 행동의 의미를 이해했고 상옥도 추사의 글과 그림이 경지에 이르렀음을 안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미화는 되었을 게고 상상이 많이 가미되었겠지만 대단한 인물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삶의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직 임상옥의 삶이 부럽고 작가의 필력이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