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한 반 도

변두리1 2020. 10. 24. 17:59

한 반 도

 

작가 김진명의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이다. 40여 년 전 일어나 한동안 나라를 달구다 이제는 발표된 것 이상으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건이다. 절대 권력이었던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 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다. 관점에 따라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끈 김재규를 보는 시각도 크게 달라진다. 작가의 치밀한 조사와 그것을 소설화하는 과정이 소설가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었다.

소설은 재판기록을 살피는 것에서 본격적인 탐색으로 들어간다. 우발적인 범행에서 내란목적 살인까지, 그 동기부터가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상식으로는 납득하기가 너무 난해하다. 그 엄청난 일을 어떻게 우발적으로 할 수 있을까? 중장에 이르도록 오랜 군 생활을 하고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직을 감당하던 그가 우발적인 범행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범행 과정과 전후사정을 생각하면 계획적인 의도를 가지고 행한 일이라고 함이 타당하다.

미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도 다른 나라 지도자의 암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명령을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내린 바 있는데 똑 같은 명령이 5년 후에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다시 한 번 되풀이 되었다고 한다. 그 사이에 세계적으로 죽임을 당한 지도자는 1026으로 시해당한 박정희 대통령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 문서에서 그 사건에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리를 한다. 그러면 왜 한 나라의 지도자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가장 개연성 있게 제시하는 것이 군수산업과 그 세력들이다. 당시 박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강조했고 그를 위해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계획이 이루어지면 미국의 군수산업계에 손실과 부정적 영향이 가기 때문에 손을 썼다는 논리다.

그러면 왜 김재규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박대통령의 심복으로 한미관계를 이루어 오면서 카터대통령 시절에 주한미군 철수라는 어려운 문제를 김재규에게 해결을 해 줌으로 커다란 선물을 그에게 안긴다. 그것은 김재규를 향한 미국의 신뢰의 표현이며 박대통령을 견제하며 움직이는 지렛대 하나를 확보하는 셈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노력으로도 되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니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인 셈이다. 처음에는 고맙기만 하던 관계도 수차례 유사한 일이 거듭되면 상대가 자신을 인정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며 그들의 요청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 관계를 이용하여 대통령을 제거했다는 추론이다. 이때에 상대로부터 작은 언질만 있어도 지속적인 지지를 의심하지 않는다. 김재규가 미국 측으로부터 이런 언질을 받았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고 뒤처리를 염려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게다. 그렇지만 미국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를 후원하는 것만큼 또 다른 세력인 전두환, 노태우로 대표되는 육사 11기를 길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행동이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 첫 번째로 초청한 외국지도자가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미국은 육사 11기를 선택했고 그로인해 그들은 1212사태와 광주에서의 518을 자행할 수 있었다. 미국이 그들의 행동을 묵인내지는 승인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재규는 결국 미국에 이용당하고 버려진 것이다. 그는 미국을 믿고 태연하고 당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음을 알고는 자신의 논리를 세우고 합리화하며 삶을 체념한다. 새로운 권력집단이 된 육사 11기는 미국과 자주국방에 대한 나름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집권 시기에는 미국을 자극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소설은 미국이 남북한 정상회담을 원하지 않은 것으로 나아간다. 남북의 군사긴장이 고조되는 것이 군수산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치밀하고 강력한 반대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미국의 군수산업계는 자신들의 이익에 밝아 구매자들이 원하는 것을 판매하기를 원치 않는다. 구매자들은 성능이 좋은 최신 무기를 원하나 저들은 한물가고 처리가 곤란한 것들을 고가에 팔기 원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뜨겁다. 현직이 유리하다지만 어찌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노골적으로 미국중심 자기 위주의 트럼프가 불리하다지만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방위비를 대폭 올리려 하고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그는 동맹의식이 없는 뼛속까지 장사꾼이다. 지구상 어디선가 전쟁을 하고 있어야 군수산업은 활기를 띄고 무기개발과 판매에 유리하다. 그 한 곳이 우리가 되지 말라는 철칙은 없다. 강대국의 게임에서 우리가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권 안팎의 선진국으로 경제와 사회, 국방이 튼튼하다고 해도 핵을 포기하지 않고 세계를 상대로 협박을 하는 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북도 진보세력도 남한이 북의 목표가 아니라지만 북의 행동과 미국의 신의를 저버리는 듯한 태도에 불안하기만 한 것은 우리일 수밖에 없다. 이제와 밝혀지는 것은 지나간 세월이 전쟁에 너무도 가까이 근접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처지다.

작가는 자국의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서글픔을 표현했는데 이 나라의 중요한 결정들이 강대국들, 그 중에서도 미국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놓인 숱한 난관들을 극복하고 어렵지만 남북의 통일을 이루어 강한 힘을 가지고 평화를 수호하는 국가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