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우리 사는 세상

변두리1 2020. 9. 17. 15:14

우리 사는 세상

 

토요일이었다. 마트를 운영하는 은행에 들러 물건을 사고 현금도 인출하려 했다. 카트를 끌고 단말기에서 필요한 금액을 찾으려니 생각보다 잔고가 많았다. 영수증과 카드를 한 손으로 함께 받기가 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그 돈을 찾으니 없다. 이런 일이 잘 없는데 원인을 모르겠다.

다른 곳을 들른 일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으니 분실했을 리 없다. 가능성은 한 가지. 단말기에 두고 챙기지 않은 게다.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어찌할 것인가? 그냥 포기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액수다. 몇 년 전, 마을금고 단말기 에서 잃어버린 맏이의 핸드폰을 찾았던 일이 생각났다.

내 실수를 가족들에게 털어놓았더니 누가 집어가지 않으면 다시 인출계좌로 입금되니 확인해 보란다. 거래내역을 살폈지만 없었다. 다시 생각이 복잡해진다. 현금인출기에서 남의 돈을 가져가는 것은 “6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란다. 누군가를 상상했다. 자신 앞에 펼쳐진 많지도 적지도 않은 현금, 잠깐 동안이라도 고민과 갈등을 준 것은 아닌가. 그 사람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전 경험으로 여러 대 카메라에 많은 장면이 기록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간의 혼란을 겪고는 매장 직원에게 가져다주고 상황을 설명했을 게다. 감시 카메라가 없을 것 같은 길거리에서 소액의 현금을 만나면? 몇 달 전,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걷고 있었고 여인은 자전거를 탔는데 페달을 구르면서 만원 지폐 하나가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여인은 신호를 보고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 멀어져갔고 소리쳐 부를 거리가 아니었다. 지나는 이도 없어 주어들고 고민하다 파출소에 만 원을 건네기도 애매하고 그 여인이 그 만 원을 찾으려 시도할 것 같지 않아 내가 갖고 말았다.

월요일이 되었다. 갈등이다. 그 마트에 전화를 걸었다. 분실물 센터를 운영하느냐 물었더니 어물어물한다. 토요일에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니 그런 것은 은행에 문의해보란다. 책임을 떠넘기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한 번 더, 그 때는 은행 영업시간이 아니었고 마트는 운영 중이었으니 알아봐 달라 하니 현금입출금기는 은행에서 관리한단다.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단말기 감시 장비를 보아야 하니 직접 와서 경찰에 신고하고 함께 찾아보자고 할 줄 알았다. 요즘 코로나로 마스크를 착용하니 제대로 확인될까도 의문이었다. 직원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담당자를 바꿔준단다. 담당자와 연결되기까지 전전하다 스스로 탈진하던 경험이 있었다. 또 그런 수렁에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고 그때라도 중단하고 싶기도 했다. 전화 속 바뀐 담당자가 내게 물었다. “금액이 얼마나 되나요?” 내가 인출 못한 액수를 말하니 돌아오는 대답이 놀라웠다. “최한식 고객님이신가요?” 그렇다고 하니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내 계좌로 입금해 주겠단다.

놀랍다. 현장에 가지 않고도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되다니. 그 돈을 발견한 이를 비롯해 몇 사람들이 성실하게 처리해주었고, 우리사회 시스템이 이토록 견고하다는 증거다. 어디를 가든 감시 장비가 많다는 얘기를 자주 듣지만,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도 확인한 심정이다. 놀라움과 함께 삶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