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변두리1 2016. 10. 29. 13:39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다섯 단어로 본 중 근대사-

 

   역사를 보는 눈은 다양할수록 좋다. 고교 시절처럼 달달 외우는 것은 실생활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와 무관할 것 같은 혹은 핵심적인 것으로 접근하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적당할 것이다. 저자는 욕망, 근대화, 제국주의, 괴물 그리고 종교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세계의 역사를 풀어가고 있다. 조금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하지만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욕망을 통해 본 것으로는 커피이야기를 하고 있다. 커피가 근대로 향하는 세계의 물결에 잘 맞았다는 것이다. 커피하면 연상되는 것이 각성, 깨어있음 같은 것인데 프로테스탄트와도 맥이 같았고 깨어있음의 시간을 늘려 발전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깨어있음과 각성으로 인한 모임과 논쟁도 인류사를 이끄는 한 힘이 되었다. 커피는 쉼보다는 다시 힘을 더하는 느낌이 있다.

   금이 신()의 것이었다면 철은 인간의 것이다. 금이 화려함과 권위의 표상이라면 철은 실용과 힘을 나타낸다. 철이 들어가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근대이후의 문명은 드물다. 산업과 생활의 각 부문에서 철은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왔다. 철을 잘 다루는 나라가 강대국이었다.

   생물의 특징으로 무리 짓기가 있다. 인류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과 먹이를 따라 무리 짓기가 이루어져 도시가 생겨나고 그곳에서 문화가 꽃피었다. 그 문화 가운데 강자가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는 특별함을 의미했다. 그 브랜드를 형성하는 도시조차도 이동해 왔는데 로마에서 피렌체로 다시 런던과 파리로 그리고 뉴욕으로 향한 식이다. 다음의 도시는 서울일까.

 

   근대화의 힘은 가속력(加速力)으로 보았다.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실험한 것이 1903년인데 인간이 우주선으로 달에 간 것이 1969년이다. 그동안에 얼마나 가속력이 붙었는지 무서울 정도다. 또 다른 요소는 민주주의다. 이것은 고대에서 시작되었지만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보편화된 것은 근대화와 그 흐름을 같이한다. 마지막 요소는 자본주의인데 그것은 힘의 과점에서 균점으로 나아가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칼뱅의 직업소명론은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제국주의에서는 그 근원이 남성적인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라고 보았다. 그 본보기로 중국과 폐르시아를 들고 그 끝없는 욕망에 망한 인물로 알렉산더를 들었다. 그 당시에도 힘의 과시와 민족의 단결, 안전의 도모 같은 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제국에서 강조된 연설의 능력이 오늘의 정치현장에도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로마의 한 특징이 속국에 종교적인 관대함이었는데 기독교가 국교로 되면서 그 관대함이 무너졌고 그것이 제국을 약화시켰을 수 있다고 한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제국은 강성하지만 권한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많은 이들이 차별받는 제국은 약해지고 망할 수밖에 없다. 제국이 약화되는 것은 세습에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전유(專有)하려는 동물적 본능의 발로일 것이다.

 

   괴물들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에서 유래하고 있다. 태생적 어려움은 물질은 세월과 함께 소모되어야 하는데 자본은 자가증식(自家增殖)을 하는 것으로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를 초래해 빈부격차를 일으키고 그것이 공동체의 일체와 화합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능을 약화내지 부정하여 적당한 동기를 자극하지 못한다.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론으로 계급적 분화와 관료제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해 실험 80여년 만에 실패로 끝이 났다. 이제 소수의 나라에서 힘겹게 그 명맥을 이어갈 뿐,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자본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인데 그들은 사회주의 몸체에 자본주의 바퀴를 달고 굴러가고 있다. 그들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파시즘은 환경적 산물로 과거의 실패로 인해 고통을 겪던 나라가 대부분의 것을 반대하면서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누르고 선동가에 의해 자신감과 긍지가 고취되면서 집단최면처럼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이제는 과거의 역사적 산물일 뿐이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네오 파시즘적 경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종교에서는 그 막강한 힘을 인정하면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맥락이다. 그 뿌리가 다르지 않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랑을 내세우는 기독교가 식민지 확장을 위한 도구로 일조하고 관용을 주창하는 이슬람은 테러단체 같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각 종교가 표방하는 본령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평화롭게 공존했던 신화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저자는 호소한다.

 

   옮긴이의 말에 동의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역사연구에 유능한 인력의 단절이 걱정스럽단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사료(史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이 아주 적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연구에 있어서 일본은 함단(艦團)이 전진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한척의 범선(帆船)이 위태롭게 가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양과 질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는 전문가적 연구도 필요하지만 백과사전식 연구도 병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전문적 연구가 관계자들과 학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백과사전식 연구는 일반인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와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저변을 확대하는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더 늦기 전에 지나간 역사를 살려내 오늘의 지혜로 되살리는 일들이 불처럼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그 일에 작은 불쏘시개처럼 이 책이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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