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스타데이지
올해 우리 집 꽃밭은 썰렁하다. 봄꽃이 산 깊은 곳에, 밭두둑에, 천변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데 우리 화단은 고요하다. 이사 와서 한해는 묵혔고 지난해는 화려했는데 올해는 관심을 소홀히 한 탓인지 장미 세 그루가 모두 조용하고 풍성해 보이던 소나무도 죽어서 캐냈다. 봉숭아는 싹이 돋는 수준이고 백일홍은 잠잠하다. 한쪽에서 제비꽃이 피었다지고 돌 틈에서 꽃잔디는 분홍빛 꽃을 피웠다 시들며 자기들끼리 보라색으로 쪼그라져 가고 있다.
쓸쓸한 꽃밭을 그래도 한쪽에서 유지해주는 꽃이 있는데 이름을 알기 어려웠다. 올봄에 석판리 길가의 꽃가게에서 작은 비닐 화분에 담긴 채로 세 개를 사다가 실내에 두었던 것을 날이 따듯해져서 화단에 옮겨 심었더니 사올 때보다 훨씬 많은 꽃을 피웠다.
국화라고 하기에는 꽃이 작고 망초라고 하기에는 꽃잎의 수가 너무 적다. 이름도 모르고 두어 달 지내다가 며칠 전에 둘째 딸 아이에게 그 꽃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니 ‘계란꽃’하면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개망초’라고 했다. 개망초는 꽃잎이 잘고 수도 없이 많은데 이 꽃은 꽃잎의 수가 현저히 적다고 했더니 “정말 그러네.” 하고는 잠시 후에 “이거네” 하고 다른 꽃을 찾아 보여 주었다. 거기에 화단의 그 꽃이 있었다.
“샤스타데이지.” 딸의 도움으로 찾아낸 이름이었다. 이름말고도 버뱅크라는 이가 프랑스의 들국화와 동양의 섬국화를 교배하여 만든 개량종으로 미국이 원산지라고 나와 있었다. ‘이 꽃이 동서양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졌구나, 꽃에도 세계화가 이루어져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이 꽃은 추위에 강하고, 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 되는 곳이면 토양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서 5-7월에 꽃이 핀다고 한다. 세계화된, 적응력이 우수한 꽃이 재배지를 떠나 꽃가게를 거쳐 우리 집에 와서 실내에 있다가 화단으로 옮겨져 잘 적응해서 수많은 송이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한 사실들을 생각하며 보고 있자니 대단한 꽃이라 느껴진다. 그래선지 그 꽃의 꽃말이 “만사를 인내한다.”이다. 끝까지 참아내면 뭔가를 이룰 수 있나보다.
잘 부쳐 놓은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처럼 산뜻하고 신선해 보이는 샤스타데이지. ‘샤스타’가 인디오 말로 흰색이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눈으로 덮인 샤스타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단다. 뭐라고 해야 하나. 한 송이 꽃도 간단하지가 않다. 그 꽃이 되기까지의 역사가 있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까지의 사연이 있었다.
이곳에 와 주어서 참 고맙다. 만사를 인내하는 소중하고 귀한 꽃 샤스타데이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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