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주말의 책 이야기
정한 시간이 가까워오자 한두 분씩 오신 이들이 삼십여 명을 이루어 큰 방에 가득 찼습니다. 원활한 진행을 돕는 가족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꼬마 도우미 하율이도 나름 할 일을 찾아 깜찍하게 힘을 보탰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시작된 이야기는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흥겹고 진지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선하고 의미 있는 시도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시도되는 일인데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졌나 봅니다.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오카리나와 하모니카 연주가 있어 더욱 다채로웠습니다. 예전에 썼던 책들도 몇 권씩 가져다 놓았는데 첫 번째 수필집과 요한복음 한자 사색 책이 먼저 동이 났다고 해 의외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넉넉했는데 전문적이기도 하고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해 몇 권만 준비했는데 더 많이 준비할 걸 그랬나 봅니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하긴 내 자신이 그만한 전문성이 없으니 한계이기는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원하는 부분의 전문가 한 분을 모시고 짧지만 의미 있는 발제를 듣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벼와 들깨 같은 한 해 농사가 누렇게 열매를 맺어 수확을 기다리는 계절에 한 해 내 삶의 결산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여러 일들이 겹치는 좋은 날이라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전언을 주기도 했습니다. 작게, 조용히 하려고 몇 군데 공지를 한 것이 배려심 깊은 분들이 많은 이들이 소속된 곳에 올리는 바람에 보다 풍성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지나친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으레 그런 자리려니 해도 너무 과분해 잘 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였습니다. 기록된 글들을 일별하면서 너무 쉽게 적당히 썼구나, 그 후로 몇 번 손을 보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걸 하는 후회도 했습니다.
타고난 외모와 몰이해로 숙명적 고통을 당하는 지렁이가 안됐다고 한 작품을 보고 지렁이 관점이라면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불쌍하지 않겠냐고 하는 얘기는 한 단계 사색을 더 거친 것이어서 내 생각의 한계를 알게 하고 더 깊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했습니다. 어느 분야든 쉬운 것도 완성도 없습니다. 남들이 가본 끝에 도달하면(무척 먼 길이겠지요), 자신의 발걸음으로 한두 발짝 더 전진한다면(그야말로 지난한 일이겠지요), 더 바랄 게 없을 겁니다. 마음은 남들이 해 논 끝까지라도 가보고 싶은데 재주 없고 게으른 것이 내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합기도를 한 일 년 수련한 걸 털어 놓았습니다. 일 년이 지나도 하얀 띠였습니다. 내 몸이라도 지킬 수 있으면 해서 고등학교 시절에 다시 몇 달을 다녔습니다. 결국 피곤해 그만두었는데 흰 띠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매사에 이런 식이어서 내 자신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대학시절에 그 아쉬움이 가장 컸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운동에 노래도 잘하고 성적마저 좋은데, 나는 그 중에 하나도 받쳐주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정신 승리처럼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니 나는 넉넉하다고 위안했습니다. 돌아보면 다른 곳엔 재능이 전혀 없으니 애먼 곳 기웃거리며 인생 낭비하지 말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비교우위가 있는 곳에 집중해 보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합니다. 쓸 만한 재주가 적으니 불러내는 이들도 없습니다. 여유로운 시간에 한 가지 일에 힘을 모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않을까 혼자 판단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모두 돌아간 후 아내와 가까운 근교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긴장을 풀면서 기분전환을 하자는 것이었지요. 들녘은 벼를 벤 곳도 있고 누렇게 빛나는 곳도 있었습니다. 한 무리 가을꽃들은 아쉬움을 담아 마지막 자태를 드러내고 몇몇 꽃들은 까만 씨앗들을 안고 제자리에서 옹기종기 빛바랜 채로 한 해의 삶을 마감해가고 있었습니다.
책 이야기 시간에 털어놓은 내 삶에 적극성 없음이 다시 생각납니다.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목회자들과 가까이 지내고 지금대로 살라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많은 부모와 자녀처럼 지나치게 분리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세월이 흘러도 들고남이 없어 늘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가까운 이웃이 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내 삶의 위기 순간에 자신의 일처럼 함께 해준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분들이 위기를 맞으면 내가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인간적 도리와 내 못남을 돌아봅니다.
많은 이들로 바쁜 시월의 중간, 그것도 주말에 기꺼이 시간을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작가가 될까, 좀 더 진실한 목회자가 될까, 더 근본적으로 인간다운 인간이 될까를 고민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하루해가 지고 어두워졌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이 짙은 어둠이 깔려 한 치 앞을 분간하지 못하는 형세입니다. 염려 가득한 때에 모두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피곤한 줄 모르고 자잘한 일들을 깔끔하게 진행해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긴 시간 큰 말썽부리지 않고 견뎌준 시하와 어떻게 든 할 일을 찾아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 준 하율아, 고맙다. 내내 접시를 나르고 사진을 찍고 사무 정리를 해준 이제는 훌쩍 커버린 딸들과 위기의 순간들을 전문적인 기술로 처리해 준 듬직한 사위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 모든 이들의 든든한 배경과 힘이 된 아내는 말할 필요 없는 가장 강한 힘이요 우군임을 밝혀둡니다.